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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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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바사연 자문위원(前 기획재정부 장관, 現 윤경제연구소 소장)

“국회가 개혁 발목 잡는 ‘국가 지배구조’ 바꿔야 한국이 산다”

바른사회운동연합

▲ 윤증현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前 기획재정부 장관, 現 윤경제연구소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퇴임 후 서울 여의도에 비영리 개인 연구소를 열었다. 한때 정치권 일각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 이 나이에 정치판에 들어가서 공직자로서 쌓은 명예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69)은 몇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한창이던 2009년 기재부 장관에 임명돼 24개월간 재임했다. 1970년대 남덕우 경제부총리 이후 30여 년 만에 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으로 최장수 재임 기간이었다. 3년 임기를 처음으로 채우고 퇴임한 금융감독위원장이란 기록도 남겼다. 기재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는 서울 여의도에 비영리 연구소인 () 경제연구소를 열었다. 윤 전 장관은 4일 연구소에서 두 시간 넘게 이뤄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경제는 진공 속에서 자라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면서 한국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특히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나.

 

일자리 창출의 근원인 성장은 정체 상태에 머문 지 오래됐다. 국제수지는 흑자지만 수입 격감에 따른 불황형 흑자로 환율에 부담이 되고 있다. 수출이 줄고 이를 보완할 내수도 부진해 미래 전망은 더 암울하다. 경제를 지원하고 사회적 갈등 해소와 이해관계 조정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그 임무와 책임을 이미 잊은 듯하다. 경제를 포함한 전 분야가 총체적 난국이다. 대한민국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말 걱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까지 덮쳤다.

 

메르스 공포로 만남과 모임이 줄면서 소비에 직격탄을 날리고 기업 활동도 위축될 것 같다. 지난해 세월호 충격이 길어지면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태가 오래가면 가장 힘든 사람은 영세 자영업자, 식당, 숙박업소, 택시 기사, 김밥 아줌마 같은 서민층이다. 조기 수습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추가 금리 인하와 추가경정예산 편성 주장에 대해서는.

 

단기 경기 대응이 불가피한 면은 있지만 현재 추경은 할 수 있는 세입 여건이 아니다. 지금 기업이 금리가 높아서 투자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금리 인하와 추경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성장률 3% 수준을 감내하면서 본질적인 개혁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다.”

 

그럼 어려운 경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국내시장이 좁아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지금은 자본집약 기술집약적이어서 과거만큼 수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수출에서 벌어들인 돈이 내수로 갈 파이프라인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어난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나.

 

의료 관광 교육 같은 서비스산업 선진화다.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라서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대형병원 하나를 지으면 최고급 일자리부터 청소부 일자리까지 5000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의료산업을 선진화하면 수출도 할 수 있다. 고급 의료관광객도 늘어난다. 태국이 연간 160170만 명의 해외 의료관광객을 받아들이고 싱가포르와 인도도 8090만 명 수준이다. 중국도 시작했다.”

 

그는 기재부 장관 때도 의료산업 개혁을 주장했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강력한 반대로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의료개혁을 접은 적이 있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개혁을 관철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의료와 함께 관광과 교육분야 규제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의료-관광-교육 규제 풀어야

 

관광산업은 일자리의 보고(寶庫). 중국 화산(華山) , 타이산(太山) , 황산(黃山) 산을 가 봐라. 해발 3000m까지도 모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우리는 제주도 한라산 케이블카를 일부 단체의 반발 때문에 10년 넘게 못 만들었다. 한라산 설악산 북한산에 모두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 케이블카가 있는 게 오히려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교육은 또 어떤가. 기러기 아빠 엄마를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방치할 건가. 이런 규제들을 혁파할 법안이 모두 국회에 간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통과 안 됐다. 의료 관광 교육 이 세 가지 규제만 풀어도 기업의 투자가 늘면서 내수와 성장, 일자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투자와 함께 내수의 한 축인 소비 침체에 대한 견해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소득 안에서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산다. 그런데 우리는 가진 사람이 돈 많이 쓰면 눈꼴 시려 못 보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는 남의 눈치 보이니까 밖에 나가서 소비한다. 골프 치러 해외 얼마나 많이 나가나. 그런 돈만 국내에 붙잡아 놓아도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규제 혁파를 통한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지만 진척이 안 된다.

 

규제 혁파 관련 주요 사안은 모두 법을 바꿔야 할 사안이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갔지만 몇 년째 묶여 있다. 일자리 관련 수십 개 법안은 처박아놓고 국회법을 개악해 자신들 권한 확보에만 관심을 쏟는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구조 개혁을 하려면 국회가 움직여야 하고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언론이 제대로 여론을 잡아야 한다.”

 

윤 전 장관은 경제는 진공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지금처럼 정치가 국가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는 현실에서 국가 지배구조(거버넌스)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금 한국은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폐지해야 한다. 세계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는 것은 너무 점잖은 이야기이고 우리의 생존과 국민의 삶을 위해서도 없애야 한다.”

 

행정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국회가 통제하는 내용의 국회법도 통과됐다.

 

지금도 국회와 행정부는 전형적인 갑과 을의 관계다. 국무위원이 국회에 가서 제대로 발언하면 삿대질이 난무하고 난리가 난다. 지금도 국회 권한이 너무 큰데 앞으로는 시행령 만들 때마다 국회 가서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야당에 가면 보좌관부터 위세를 부리고 공무원들이 줄 서 있다. 얼마 전 한 신임 장관이 야당 의원 만나러 갔다가 2분 만나는 데 1시간 반 기다렸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개악한 국회법이 시행되면 행정부가 국회에 예속돼 행정의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은 추락할 것이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제한된 임기 내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임해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현 정부는 실패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갈팡질팡하고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리더십 결여도 문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국가의 원수(元首)인 만큼 최고의 정치인이 돼 큰 시각과 그림으로 국가 원수 역할을 하는 데 시간을 좀 더 할애했으면 좋겠다.”

 

그는 정부 여당과 함께 야당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건전한 야당이 건전한 여당을 견인할 텐데 지금의 야당은 무책임의 극치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가 집권일 텐데 아마도 이 목표를 포기한 게 아닌가 싶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만 해도 국민 세금을 지킨다는 원칙으로 공무원 수를 줄이고 연금 개혁에 앞장서야 할 야당이 공무원 표만 의식해 가장 비겁하고 비()개혁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이번에 야당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윤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경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국가 지배구조의 근본적 개편, 특히 현행 헌법상의 권력구조와 국회 개혁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단기적인 경제 문제보다 이 사안이 훨씬 본질적이라는 말도 거듭 역설했다.

 

우리 헌법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해 놓은 것인데 나쁜 것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걸핏하면 제왕적 대통령운운하는데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가 동의하거나 승인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제대로 펼 수 없고 부처 이름 하나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못 고친다. 중국은 최고지도자 임기가 10년이고 미국도 연임하면 8년이다. 내각책임제인 영국이나 독일 일본도 선거 결과에 따라 10년 이상 집권하기도 한다. 국가의 구조적 장기적 체질을 바꾸려면 5년 단임제로는 어렵다. 5년 중임제의 순수 대통령제나, 아니면 아예 내각책임제로 가는 게 낫다.”

 

국가 거버넌스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가.

 

전문화의 시대, 지식정보화의 시대에서 능력과 실적이 우수한 경영자는 10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이니 기업과 금융기관 경영자도 3년이면 물러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오너십 없었으면 저 정도의 글로벌 회사가 될 수 있었겠나.”

 

국회의원 출신 장관에 대한 견해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어떻게 의원이 장관을 하나.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자리를 한 사람이 맡는 것 아닌가. 정치할 사람은 언젠가 정치로 돌아가려 하는 법이다. 국회의원의 입각이나 대통령특보 기용은 막아야 한다. 그럴 바에는 내각제를 하면 될 것 아닌가.”

 

노동 개혁이 주춤거리고 있다.

 

지금 노조 가입률은 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불법, 폭력, 정치단체화해 가고 있다. 노동조건이나 근로여건이 아닌 정치 문제에 그것도 평화적이 아닌 폭력적인 방법으로 지나치게 개입하는 현재의 노동문화는 나라 앞날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해결도 기득권의 상징화가 된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의 노동문화 변경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검찰의 기업 수사가 길어지고 있다.

 

명백한 위법행위를 한 기업은 당연히 처벌해야 하지만 기업 활동에 대한 과잉 범죄화는 경계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 창출의 주체로서 종업원과 그 가족,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기업 수사는 가급적 빨리 종료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금감위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을 지내면서 실력과 실적, 리더십 면에서 장관다운 장관이란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후배 공직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다.

 

정부 정책이 먹히려면 정부가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신뢰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정직해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 출처: 동아일보, 2015. 06. 08. >

 

등록일 : 2015-06-08 11:44     조회: 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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