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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야간 통행금지 해제

이석구





필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전 언론인>



<프리즘> 야간 통행금지 해제

      

오늘 만 40세가 되는 사람들은 야간통행 금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광복 후 미군 점령 하에서 실시된 야간통행금지는 198215일부터 폐지됐다. 이 제도가 실시된 지 364개월만이다. 미 군정청 하지 사령관은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194598일 군정포고 1호로 서울과 인천지역에서 야간통행을 금지했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9시간 동안 밖에 나다닐 수 없었다. 929일부터는 미군 점령 하 전 지역으로 야간통행금지가 확대됐다. 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로 단축됐다.

 

이 군정법령은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계승됐다. 치안 상황에 따라 통금이 밤 8시부터 또는 11시부터 시작 되는 등 들쭉날쭉 했지만. 195441일부터는 경범죄처벌법에 야간통행금지 위반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넣어 법령으로 제도화됐다. 경범죄처벌법전시·천재지변 기타 사회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 내무부장관이 정하는 야간통행 제한에 위반한 자라고 규정, 야간통행금지 위반자를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했다. 19831230일자로 이 법이 전면 개정되었을 때에도 야간통행 제한 위반은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 제도는 6.25와 남북 대치로 인해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를 받았다. 야간통행금지 제도는 시대 상황에 따라 통행시간이 연장되기도, 일시 해제되기도 했다. 사회 불안요인이나 정변이 있을 때에는 통행제한시간이 연장되고, 성탄절이나 연말연시와 같이 야간통행이 빈번해질 때는 일시 해제도 됐다. 그러다 경주·제주도(196418충청북도 (196531) 등이 순차적으로 해제되는 과정을 거쳐 전면 폐지됐다.

 

198215일 국무회의에서 경기·강원도 안의 휴전선 접적지역(接敵地域)과 해안선을 낀 면부(面部)들을 제외한 전국 일원의 야간통행금지 해제가 의결됐다. 198811일에는 제외되었던 나머지 지역도 전면 해제 됐다. 야간통행금지의 해제는 국민생활의 편익 증진, 관광 진흥, 경제활동 활성화, 88올림픽 및 86아시아경기대회 개최관련 국가이미지 제고 등을 위한 명분으로 단행됐다. 국립영화제작소는 통금해제 관련 홍보영화를 제작, 이를 극장에서 상영케 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통금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큼직하게 자리 잡은 일상생활이자 문화였다.

 

조선 태종시절부터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된 기록이 있다. 그 후 식민지, 미군정, 6.25, 남북 대립, 군부독재 등을 거치며 이어져 왔다. 해방 후에는 냉전체제 안에서 국가안보와 치안유지라는 명분 아래 도입됐다. 그러나 점차 정부의 국민통제수단으로 변질 됐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개개인의 신체와 시간을 통제·관리하는데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반독재 민주화 세력과 이데올로기 통제기능으로 활용됐다.

 

국가의 강제적인 통행시간 통제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통금이 시작되기 전 황급히 집에 돌아 가야하는 상황 때문에 빨리 빨리 문화’,‘택시 합승’, ‘새치기등의 문화가 파생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제도가 장기간 실시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조급증’, ‘속전속결주의등도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50대 후반 이후 세대는 이 제도와 관련, 최소한 하나 이상의 추억거리를 갖고 있다. 12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방범대원들의 단속이 시작됐다. 통행금지를 위반하여 걸리면 가까운 파출소에서 지내다 새벽 4시 이후 즉결 심판으로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나 친지에게 연락, 벌금을 가져 오게 하기 도 했다. 벌금을 못 내면 구류를 살아야 했다. 따라서 밤 12시가 임박하면 택시잡기 등 귀가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방범대원과 위반자들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어느 골목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여인숙이 나 여관은 통금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통행금지는 이제 60대 이상 세대에게도 가물가물한 옛 일이 돼 버렸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과도 같다. 군사 독재 정권,공산사회 등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한국 사회에서 낳고 자란 젊은 세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60대 이상 노인 세대들이 선진 한국 사회를 만들며 겪어야 했던 고초다. 그들 은 이제 꼰대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고 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란 말을 곱씹으며.


등록일 : 2022-01-14 12:21     조회: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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