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 교육, 위헌이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1조 제1항)
“2011~2013학년도 서울지역 일반계 고등학교의 서울대 정시 합격자 187명 가운데 131명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3구 출신이었다. 그 비율도 2011학년도 54.3%에서 2012학년도 57.7%, 2013학년도 70.1%로 매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실)
“2014학년도 고교유형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의 합격확률을 분석한 결과 특목고가 12%로 일반고(1.4%)의 9배에 이르렀다.... (실제로) 서울지역 고교 졸업생 100명당 서울대 합격자는 과학고 41명, 외고 10명, 일반고 0.6명으로, 일반고보다 수업료가 3배 이상 비싼(연 800만원 수준) 특목고 학생의 합격률이 일반고보다 15~65배나 높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 연구논문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
헌법은 한 국가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할 최소한의 당위를,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교육이 최소한 어떠해야 하는지 그 기본정신을 규정한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2014년 11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대한민국의 헌법으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벗어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안겨준다. 어느 의미에서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된다.’는 극단적인 논리까지 제기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SKY 대학의 진학통계만 가지고 재단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특목고나 서울대 등의 학생선발 방식 자체가 바로 “능력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주장이 맞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전체적인 교육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정지역만 해마다 향상되는, 해마다 다른 지역과의 격차를 더욱 벌여나가는 ‘교육적 능력’을 지녔다는 주장이 과연 얼마나 사회적인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강남3구의 심화되는 서울대 합격생 독식현상은 사실상 이런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문대학들과 교육당국이 바로 그런 ‘교육적 능력’만을 내세워 88%에 이르는 절대 대다수 학부형의 상식에서 벗어난 채 기존의 입학전형방식을 과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그런 방식은 더 이상의 사회적 동의도 더 이상의 국제 경쟁력도 보장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여러 문명은 보다 양질의 교육을, 보다 광범한 구성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공유할 때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후발국가 역시 이것을 어떻게 빠른 기간 안에 이뤄내느냐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이전 시기, 서울 말고도 각 지역별로 이른 바 명문고교라는 것이 있어 저마다 수십명씩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부산의 경남고 부산고, 대구의 경북고 계성고, 광주의 광주일고, 대전의 대전고, 인천의 제물포고, 경남의 마산고 진주고, 강원의 춘천고, 전남의 순천고, 전북의 전주고, 충북의 청주고, 제주의 오현고... 지금에 비해 서울대 신입생 정원이 40% 밖에 안 되던 시절인데도 그랬다. 그 시절 ‘개천’은 전국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지방의 개천마다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 인재들이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핵심세력으로 성장했다. 지역 차원에서는 불가피하게 입시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작은 단점도 있었으나, 전국 차원에서는 자생적인 지역균등을 이룬다는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지역균등의 측면에서는 그 시기가 지금보다 더 헌법정신에 충실했던 시기였던 셈이다.
학교 유형별 서울대 합격 확률
2014년, 대한민국의 교육 균등성은 사실상 학생 자신의 잠재능력이 아닌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면서 더욱 훼손되고 있다. 서울대 김세직 교수는 2014학년도 서울대 합격률과 서울의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 및 사설학원 수를 비교한 결과 모두 “강한 비례 관계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대 합격자를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하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서울 다른 구보다 거의 2배에 이르는 아파트 매매가를 기록하며 상위 3위를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학원수에서도 다른 구에 비해 2~10배씩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합격확률도 역시 1~3위를 휩쓸었다.
김 교수는 “확률적으로 '용'의 씨는 각 지역, 각 계층에 골고루 뿌려지지만 지금 용이라고 뽑히는 학생들은 지역적·계층적으로 일부에 극심하게 몰려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수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보다 생산성 높은 부문에 배분돼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증대돼 국내총생산(GDP)이 극대화될 수 있다"며 "(현재의 대학입시를 통해) '가난하며 똑똑한 학생'보다 '부유하며 덜 똑똑한 학생'에게 자원이 보다 많이 배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이제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라는 요소는 대학입시 차원을 넘어 대학 교육 전반, 나아가 직업 획득에 이르기까지 미래세대의 교육 균등성, 기회 균등성을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 대학의 성적은 물론 인턴취업, 해외연수, 입사시험, 전문직 진입 등 학비 이외에도 수백만에서 수천만원씩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스펙경쟁을 무차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가능성을 지닌 인재의 선발과 양성을 가로막는 이같은 불균등과 비효율이 지속된다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져온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은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1960년대 이후 40년 동안 연평균 8%라는 사상 초유의 초고성장을 이룩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바로 그 시대 나름대로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을 가동해 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선발하고 양성해 이들에게 보다 많은 자원과 재량권을 배분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20세기 후반 제조업의 쇠퇴 속에서 찾아낸 국제경쟁력 회복의 대안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대학교육을 학문융합-자기주도학습능력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컴퓨터와 정보기술로 대표되는 새로운 산업 분야의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유효적절하게 선발하고 양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사 속의 한국 모델을 가능하게 한 ‘모방을 통한 양적 성장’을 넘어 , 미국적 혁신을 가능케 한 ‘창조를 통한 질적 성장’까지도 소화 흡수해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인재, 인력자원이다. 올바른 인재와 인력자원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총체적인 교육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고 가동되지 못한다면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경제전체의 생산성도, 공동체의 행복지수도 높아질 수 없다. 한때 세계사 속의 ‘한국 모델’의 성공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던 ‘한국 교육’은 이제 오히려 우리의 전진과 희망을 가로막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실이 이처럼 헌법정신에 어긋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둘 가운데 하나일 수 밖에 없다. 현실을 헌법정신에 걸맞게 바꾸든지, 헌법을 현실수준에 걸맞게 바꿔야 한다. 교육 현실이 우리를 내몰아가고 있는 이 갈림길에서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분명하다. 교육 현실을 헌법정신에 맞게 바꾸고 혁신하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길이고,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는 길이다.
바른사회운동연합은 바로 이 교육의 혁신을 통해 헌법의 정신을 되살리고 우리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이룩하는 길에 지속적으로 매진할 것이다.
바른사회운동연합 | 2014-11-19 | 조회 2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