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경쟁을 두려워하는가?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문재인정부는 좌파정권인가? 진보정권인가?
요즘 좌파니 우파니, 또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헷갈리도록 혼용되어 나는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다. 다만 진보진영에서 ‘경쟁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고, 그런 점에서 이 정부는 ‘진보’의 인증을 받은 것 아닌가.
문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즉각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를 폐지시켰다. 그리고 노조와 타협하며 수년에 걸쳐 이 제도를 정착시켜 온 기관장들을 적폐로 몰아 정리하였다.
교육부는 수능, 내신에서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자사고, 외고 등 특목고를 무력화시켰다. 학생들의 줄 세우기 경쟁은 안 된다는데, 세로세우기는 안되고 가로세우기를 한 것이다. 성적 자체가 상대적인 것인데 절대평가라니, 혼자 달리면 늘 1등인데, 달밤에 혼자 체조하는 모습 아닌가.
이제 공무원조직에 이어 공공기관들이 ‘경쟁’없는 조직이 되었다. 경쟁 없는 조직은 경쟁력 없는 철밥통 조직이다. 보신주의와 무사안일, 복지부동, 비효율과 나눠먹기가 판친다.
학생들도 ‘제비뽑기’식 대입제도에 일생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노총과 전교조는 정부결정에 갈채를 보냈지만, 과연 이런다고 ‘평등사회’가 될까? 진보정부의 고관 자제들도 상당수가 특목고, 자사고 출신인 것을 보면 이들이 추구하는 평등사회란 오묘한 불평등사회임이 틀림없다.
우리사회는 경쟁사회다. 사회가 고도화하면서 모든 면에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끼리 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겉으로는 화해, 협력, 나눔, 더불어 사는 공동체 등 따스한 어휘로 포장되어 있지만, 어느 세계건 밑바닥에 깔린 경쟁의 틀은 냉엄하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그리고 이웃관계, 동료관계, 국제관계도 이 같은 틀 위에 세워져 있다. 어차피 경쟁은 차갑고 엄격한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 의해 성장해 왔다. 경쟁은 상호 동기유발의 촉매다. 자칫 부패와 안일로 흐르기 쉬운 사회의 소금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철학이다. 백 미터 달리기도 혼자 뛰면 기록이 안 나온다. 같이 경쟁하며 뛰어야 나온다.
그런데 정부는 경쟁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성과연봉제나 대입제도뿐 아니다. 교원평가제나 교수평가제는 이미 전부터 전교조의 주장으로 무력화되었다. 고교평준화에 이어 대학도 평준화(국립대학부터)시키겠다고 한다. 경쟁 없는 사회, 모두 똑같이 대우받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유교사회였다. 연공서열을 항상 앞세우고 ‘나이가 곧 벼슬’인 사회였다. 차례차례 승진하고 똑같이 나누는 사회였다. 1기생, 2기생이 순서 있게 나아간다. 연한이 되면 자리가 없어도 승진한다. 그래서 보직 없는 과장, 부장도 많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나약한 조직이 대학이다. 대학에 가보면 거의 정교수이고 부교수, 조교수는 별로 없다. 가분수조직이 되었다. 미국대학은 테뉴어를 얻기가 힘들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버드대학은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교수들이 더 많다. 영국대학에는 과마다 한 명의 교수가 있을 뿐이다. 이 한 명의 교수가 은퇴하면 전국에서 공모를 통해 자리를 메운다. 강사 하다가 자동적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도 교수는 전공별로 한 명 뿐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사회는 한번 임용되면 경쟁 없이 평생직장이 된다.
경쟁이 두려운 것이다. 차례차례 하면 언제이건 나에게도 차례가 온다는 것이다. 무서운 안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누가 조금만 출세가 빨라도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질시의 대상이 된다. 힘들게 경쟁을 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기보다 적당히 편하게 나눠 갖고 싶은 것이다. 일종의 담합이다. 집단이기주의다.
서양사회에는 개인주의가 발달되어 있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승부근성이 있어서 필요하면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한다. 조직 내에서의 엄격한 경쟁과 평가와 경쟁은 승복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인사고과에 말도 많고 평가자체를 부인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경쟁하기보다 집단적으로 시위를 한다. ‘우리’ 속에 ‘나’를 묻고 집단이기주의에 호소한다. 노조는 물론 협회니 학회니 단체니 하는 이익단체가 항상 앞장선다.
정권이 바뀔 적마다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닫힌 조직을 열린 조직으로 바꾸고, 평가제를 마련하여 경쟁논리를 부여하려는 노력 말이다. 그때마다 저항이 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이 같은 시도마저 사치가 되어 버렸다. 거꾸로 가고 싶은 것이다. 비효율은 공무원증원으로 메운다는 계산이다.
세계가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산업은 4차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사회가 미래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발전해 나갈 것인지 우리의 고민은 크다. 이와 함께 우리의 교육은 경쟁사회를 헤쳐 나가는 지혜와 페어플에이 정신, 나아가 서로간의 타협과 협동정신을 키우는 것이 핵심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좌파정부는 ‘경쟁 없는 평등’을 찾는, 답 없는 질문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건설부차관국토연구원장교통연구원장중부대 총장단국대 교수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2018-03-05 | 조회 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