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가(流民歌)
유 민 가(流民歌)
나라 정치한답시고 뽐내는 자들아, 혹세무민(惑世誣民)하지 마소.
목마른 백성들은 샘물 찾아 떠도는 참새들인 데 긴 목 드리운 그대들은 황새인가. 애처로운 물고기를 뱁새처럼 빨리도 삼키는구나. 백성의 피와 땀 서린 떡이 그대들 입에는 꿀처럼 달겠구나. 차라리 검은 까마귀가 되라. 까마귀는 살갗은 검어도 죽은 고기를 삼켜 청소라도 해주지 않더냐.
백성을 잡초 취급 말지어다. 민초도 다 흙속에 자란 잡초라오, 잡초 속에 우뚝 자란 저 큰 소나무도 그걸 키워준 건 한 줌의 흙이라오. 잡초가 귀찮다고 모적(蟊蠈)은 되지 마소.
감사하오, 나라 다스리는 영수님들. 독수리눈으로 미소 짓는 기지와 팔자걸음 위풍당당 용맹으로 고단한 백성들 위무(慰撫)하여 주시느라 고생이 많소이다. 그런데 고맙기는 하오이만. 자신감이 아집으로 비춰지고 아집이 다시 자만으로 둔갑하여 겸양지덕 남 말 될까 걱정이외다. 조석으로 변덕스런 민심은 호랑이처럼 으스대는 지존보다 차라리 수즙은 듯한 어미닭을 더 좋아 한다오. 고운 마님 예쁜 옷 잎혀 손잡고 다닌다고 사람들이 좋아하겠소? 아니오, 천만부당 말씀이오. 서민들은, 겉으로는 부러워하지만 속으로는 화려한 장미보다 안뜰에 조용히 핀 수즙은 민들레를 더 아낀다오.
감사하오, 삿갓 쓴 여의도 전당에 계시는 선량네들. 밤낮 없이 싸움질하시느라 수고가 많소이다. 그래도 당신들은 행복하지 않소? 순진한 백성들에겐 무노동무임금을 외쳐대면서 당신들은 허구한 날 혀끝만 놀려도 무노동고임금을 받으니 그 얼마나 좋소. 백성들은 저울추 끝에 매달려 안간힘 쓰느라 열불이 나서, 얼굴이 누렇게 떴는데 헛기침하는 높으신 분들 여유작작 거문고를 치고 있네.
감사하오 사또님들, 세금으로 거둔 돈 제 돈도 아니면서 인심을 쓰듯 뿌려주어 우리들 어리석음 고맙게도 깨우쳐 주시니 그 얼마나 좋소. 임자 없는 눈 먼 돈이니 고맙기는 하오만 나라곡간이 울고 있소이다. 후손들이 울겠소. 눈 먼 자들의 합창소리만 요란하더이다.
나라 정치한답시고 근엄한 척 지체 높은 분들이여. 국민이 주인이고 나라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그대들이 쩍하면 버릇처럼 국민, 국민 말로만 외친다고 백성이 잘살게 되는 거요? 나라의 안위와 경제가 그대들 손에 달렸거늘 겉으로만 나라사랑하는 척 진실 같은 거짓말 밥 먹듯 하면 부끄럽지 않겠소. 눈귀는 묶어 두고 입만 살아 지껄이면 되겠소.
나라 일 이제는 그만 좀 어지럽히소. 보기에도 딱하오. 양치기 소년도 속으로 웃겠소. 이름 들으면 태산 같이 높고 거룩하지만 속 들여다보면 나쁜 사람 많다오. 벼슬아치 마다하고 숨어 사는 일민(逸民)도 많다는 걸 알기나 아오. 이제는 말잔치 그만 하소.
가난한 자들 입이 타들고 혀가 해지고, 목이 쉬도록 하소연해도 알아 줄 이 아무도 없다 하더이다. 바라옵건대, 허구한 날 정쟁은 적당히 하고 법 잘 만들고 정책 잘 펴서 백성의 돈 갉아 먹는 좀벌레들 잡아내어 먹을 걱정, 집 걱정, 자식걱정이나 덜게 해 주오.
쩍하면 법 법 법, 고발 고발 그만 좀 하오. 제발 부탁이니 법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는 말아 주오. 대다수 일이 그대들이 정치를 잘했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것들 아니요? 아량과 포용, 타협도 없는 옹색한 정치, 그 꼴 더는 못 보겠소. 이러다간 누더기 난장판 되겠소. 차라리 판관, 포도대장더러 정치하라 하소.
세상일 법으로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황당죄, 괘씸죄, 염치죄는 정서법으로 다스림이 제격이요. 법치와 법 만능은 하늘만큼 다르다오. 세상일 시비진위(是非眞僞)가 단 칼로 베듯 그리 쉽단 말이요. 법 위에 양심과 도덕이 있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이오. 이러다간 교활한 자 득세하고 정직한 자 발붙일 곳 없겠소이다. 우습구나 이 세상, 왕눈을 크게 떠도 잿불조차 꺼져가네.
저 검은 고양이들 거동 좀 보소. 주인이 배불리 먹여 주니 잡으란 쥐는 안 잡고 쥐새끼들과 놀고 있네. 고양이란 놈 주인 눈치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니 쥐새끼란 놈들 덩달아 좋아서 춤을 추네. 무리지어 못된 짓 그칠 날 없네. 이러다 곡간에 쌀 떨어지면 주인만 곯겠구나.
제 흠은 거지에게 주고 남의 흠 찾아내면 원숭이처럼 기뻐 날 뛰면 아무리 백성이 우매한들 누가 모르겠소. 귀먹은 맹신자들 빼놓고 누가 모르겠소. 오리발이 수천 개라도 모자라겠소. 헛소리 하는 자들 속에 숨죽이고 있는 멀쩡한 사람을 미친놈이라 수군댄다면 그런 세상 누가 좋아하겠소.
편가르기는 또 웬 말이요. 사사건건 쩍하면 서로 나뉘어져 으르렁대면 이 어지러운 세상 어디로 끌고 가려 하오. 남북이 갈려 그렇지 않아도 서글픈데 이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네 편 내 편 갈라서게 하면 어쩌란 말이요. 거룩하신 위정자님들이야 당파싸움 유전자가 진드기처럼 지겹도록 붙어 다닌다 쳐도, 뱃심 여린 백성들까지 갈라치기 시켜 뭣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진흙탕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까 걱정이외다.
이런 걸 ‘팬덤’이라 서양말로 지껄이면서 함부로 미화하지 마소. 국민통합, 국민화합 백만 번 외쳐 본들 뭐 하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 모르오? 지나치면 민의가 등나무처럼 배배 꼬여 공정해야 할 정치가 공염불에 도로아미타불 될까 걱정이오.
사회는 왜 이렇게 틈이 벌어진단 말이요. 돈 많고 힘 있는 집안 아이는 낳자마자 귀한 몸 되는데 어찌하여 가난한 서민 집 아이는 한 평생 송사리로 살다가 두꺼비 밥이 되는 세상, 이 웬 말이요. 사람 낳고 돈 낳고 사람 낳고 권세 있지, 돈과 권세 낳고 사람 낳는단 말이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정말 맞소? 중산층은 종잇장처럼 얇아지는데 지체 높은 위정자님들은 정쟁놀이를 하다 지쳐서 지금 낮잠을 주무시고 계시나요.
서글프고 서글프도다. 어진 원님들이시어, 지금 가난한 백성은 쭉정이 먹이 끄는 개미신세요, 다리 잘린 벌의 처지로소이다. 가는 곳마다 이리떼 이빨 드러내고 숲속은 온통 가시나무로 덮였나이다. 부디 역자사지(易地思之)하시어 씨암닭 알 품듯 굽어 살피옵소서.
정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부탁이오. 제발 정치꾼은 되지 마오. 그리 빨리 구정물에 섞여 그 잘난 권모술수 책사는 되지 마오. 젊은 패기에 기대여 제 얼굴 잘 났다 도취되지도 마오. 나라혁신만이 살 길이지만, 낡은 벽 깬답시고 예의, 질서마저 부수지는 마오, 못된 송아지 뿔부터 난다는 말 못 들었소? 검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새 시대 새 인물답게, 옳은 건 옳다 하고 틀린 건 틀린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게나. 나라의 미래가 그대들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늘그막에 할 말은 없소만 내 한마디만 하리다. 뭇사람들 한데 어울려 한바탕 놀이판 벌이다 가는 어지러운 이 한세상, 웃게는 못할망정 울게는 하지 마소. 배고픈 건 참겠소만 악취는 못 참겠소.
이 늙은이 언덕에 앉아 흐르는 먼 강물 바라보는 뜻 묻지 마오. 아무 뜻 없는 것이 내 뜻이오.
초승달이 만월 되고 만월이 그믐달 되는지라 권세 높은 나라님들, 보름달 높이 떴다 뽐내지 마오. 명암의 뒤바뀜은 바람처럼 빠르다네. 저 강물도 모래톱, 돌머리에 부딪쳐도 오래 머물 생각 없다오.
모두가 허장성세니라. 다만, 성군이 나타나면 운다는 그 봉황은 언제 오려는지. 그 때가 오면 앙천대소(仰天大笑)하오리다.
舒川 박종흡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現 수필가 시인>
<성균관대 행정학박사>
<前 국회입법차장, 前 공주대 객원교수> | 2022-08-17 | 조회 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