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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자문위원, 자유칼럼그룹- 향(香)나무 뽑기와 적폐청산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9-04-19
  • 조회수843

필자가 학창시절에 ‘고려청자’, ‘세종대왕’, ‘한글 창제’, ‘이순신’ 등에 대한 역사를 배우면서 얼마나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는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반면 각종 사화(士禍)를 배우면서는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이미 죽은 자의 묘를 파헤쳐, 관을 부수고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대목에서는 그 ‘잔인함’에 어찌할 줄 모르던 ‘쓰디쓴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2019. 02. 19.

‘일본 나무 뽑기’가 근래 들어 적폐청산의 한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현충사에서, 국회의사당에서 일본 나무를 뽑아내더니 바로 얼마 전에는 지방교육청 건물 앞에서 ‘일본 나무’를 뽑아내는 장면이 보도되었습니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는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나무가 뽑히는 이유는  바로 향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향나무는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했습니다. 수령(樹齡) 400년 된 경상북도 안동석수암향나무(安東石水庵香), 367년 된 전라북도 고창군 향나무, 200년 된 경기도 포천 향나무, 그리고 서울 창덕궁에도 오래된 향나무가 있습니다. 향나무는 울릉도를 비롯하여 영호남 지역은 물론, 일본 여러 지역에도 분포된 수종입니다. 


   
 동궐도(東闕圖)의 향나무
 

그런데 문제가 된 향나무는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인 ‘가이즈카(Kaizuka)향나무’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해서 일본 정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이제는 우리의 정원이나 공원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향나무를 왜 뽑았을까? 이해가 안 되어 문헌을 찾아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1909년 1월 12일 대구의 달성공원에 일본 요배소(遙拜所, 동쪽을 향해 멀리 바라보며 절을 하는 곳)가 신축되자 조선의 27대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순종(純宗)이 아마도 당시 정치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멀리 대구까지 내려가, 그것도 일본 신사의 전신인 ‘황조천조대신(皇朝天照大神)의 요배소’ 봉헌식에 참석하여 기념식수한 나무가 바로 일본에서 가져온 ‘가이즈카향나무’였다고 전해옵니다. 


이때 순종 황제를 ‘모시고’ 당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으니, 죽기 약 10개월 전의 행사였습니다. 기념식수를 하였다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왜 하필 일본 개량종인 ‘가이즈카향나무’를 기념수로 선택하였는지 일본이 의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식민정치의 초기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그런 ‘그림’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가이즈카향나무 식수와 관련해서 전해오는 ‘전설’은 일화(Anecdote)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계명대학교 김종원·이정아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순종이 기념식수를 했다고 알려진 1909년 1월 9일은 엄동설한의 계절이라 나무를 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식물 생장에 치명적인 제한 조건이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기념식수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이츠카향나무의 실체 – 대구 달성(達城) 사적지의 노거수 두 그루를 사례로” 《정신문화연구》 제41권, pp. 335-352, 2018.).


연구자는 달성공원 요배소의 ‘기념식수’는 적어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하지만 그곳에 있는 두 그루의 가이즈카향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진실인 양 정설로 받아들여 지는 실정이다.”라고도 지적하였습니다. 


‘가이즈카향나무는’의 유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실은 우리나라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일본 색’이기에 ‘적폐청산(積弊淸算)의 대상으로 몰리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필자가 우리 조선 시대 초상화를 연구하면서 일본에 전해오는 초상화를 미술사적 측면에서 비교하며 얻은 생각은, 두 나라의 초상화가 완연(完然)하게 다르듯, 두 나라의 정원문화 역시 크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정원수의 형태가 두 나라 사이에 크게 다른 것은 우리는 사람이 손질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를 선호한 반면, 일본은 사람이 손을 써서 ‘조형’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치 프랑스의 정원이 기하학적으로 손질한다면, 영국식 정원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강화도 땅을 밟은 프랑스 장교(Henri Zuber, 1844~1909)가 “한국의 정원은 영국식 정원(English garden)이다.”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앙리 쥐베르, 살림출판사, 2010) 라고 지적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 본보기가 바로 향나무에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필자는 일본의 향나무가 여기저기, 오밀조밀하게 손질하여 하나의 ‘조형물’로 다듬어진 반면, 우리의 조경수는 예나 지금이나 ‘가위질’을 하지 않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나무 그 자체보다, ‘나무 가꾸기’ 차원의 다름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뽑아대는 향나무는 일본에서 갑자기 공수하여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 땅에 적응하여 뿌리내리고 살아온 ‘생물’입니다. 그래서 ‘일본계 나무’라는 이유로 마구 뽑아대는 모습이 지각이 있는 행동이라고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잘 자라는 나무를 뽑아내는 것이 왠지 ‘부관참시’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필자는 최근 들어 ‘적폐청산’이란 말이 난무하는 현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특히 적폐청산이 친일파청산과 맞물리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운 파도에 휘몰리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친일파’, ‘친일파’를 외쳐대니 일제강점기에 ‘그 일본’에서 태어나 짧지만, 일본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시무라(志村)’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던 필자는 아마도 친일파청산을 외쳐대는 세대에게는 ‘친일파’로도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서로를 아우르고 품고 가야 할 역사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관참시와도 같은 ‘일본 나무 뽑아내기’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고 광복 70여 년이 지난 올해야말로 ‘친일’의 눈초리를 받는 당사자나 후손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서로를 아우르고 품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봅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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