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교육부가 없어져야 대한민국 교육이 산다는 말이 있겠나. 지금 대한민국 교육 현실은 암담하다. 참담하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어떤 모습이 될지 끔찍하다. 교육개혁은 혁명적 차원에서 시행돼야 한다. 대대적으로 바꿔야지 찔끔찔끔 뜯어고치는 식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교육개혁을 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거다. 교육부 장관은 관을 세 개 짜 놓을 각오를 하고 결연한 자세로 교육개혁을 해야 한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69·윤경제연구소장)의 음성은 격앙돼 있었다. 지난 9월 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윤경제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도중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고, 종종 흥분했다. 특목고 관련 얘기 도중에는 “내가 이 대목에선 화가 안 날 수 없다”며 흥분이 극에 달했다. 윤증현 전 장관은 40년 이상 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재정경제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고, 금융감독원 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일했다. 그런 그가 뒤늦게 교육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24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교육개혁 토크콘서트의 연사로 나서 한국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한국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교육개혁과 반부패 법치주의를 표방한 시민단체 ‘바른사회운동연합’(대표 신영무)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김병일 선비문화수련원(전 기획예산처 장관), 강연흥 서울 구룡중 교장, 김경식 경북대 사범대 교수도 연사로 나섰다. 이날 청중의 관심은 단연 윤증현 전 장관의 발언에 쏠렸다. 경제통인 그가 제시한 교육개혁의 방향성은 웬만한 교육전문가 뺨치는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교육개혁 토크콘서트는 전국을 돌며 열리고 있다.
나는 안동 콘서트 얘기를 듣고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 전 장관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흔쾌히 교육 관련 취재 요청에 응했다. 그는 현 대입제도는 물론, 특목고 입시와 대학구조조정 등 교육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숲은 물론 나무도 함께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토크콘서트를 위해 공부를 따로 하셨느냐?”는 질문에 “원래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교육계 인사들과도 종종 만나 의견을 나눠 왔다”고 답했다.
그는 교육개혁운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정치·문화·사회 어떤 분야든 근저에는 교육이 있다”며 “지금 청년실업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 잘못된 교육 탓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실업은 교육문제 해결없이는 해결 난망이다. 청년실업의 근본원인은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세계화로 노동력이 국경을 넘으니까. 그런데 특히 한국은 교육이 문제다. 오로지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는 대한민국 교육은 실패다. 앞이 캄캄하다.”
그는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평소 생각과 경험을 살려서 몇 가지 제안을 하겠다”며 준비해둔 메모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가 제안한 교육개학의 핵심은 △대입 수능시험 폐지 및 대학에 100% 학생 선발 자율권 부여 △고교입시 부활 △사립학교 재정지원 중단 및 기여입학제 도입 △특목고 출신의 진출 분야 제한이다. 현행 입시제도의 판을 뒤집어엎는, 혁명과도 같은 제안이다.
제안의 이유는 간단하다. 각자 소질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것. “교육에는 두 가지 기본 분야가 있다. 능력과 품성이다. 능력은 전문지식 교육이고, 품성은 인성 교육이다. 전문지식은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고, 품성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거다. 학교 선생님은 어떤 존재이고, 학우와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거꾸로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또 한국 사회와 나라는 무엇이며, 법은 왜 지켜야 하는지 등 본질도 포함된다.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학교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암담하고 캄캄하다. 초중고로 갈수록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무엇보다 아이들이 불행한 교육”이라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내 친구가 중학생 손주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나는 바쁘니 할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세요’ 하더란다. 언제 가면 되겠냐고 묻자 ‘잠깐만요, 스케줄 보고요’ 하더니 한참 있다가 ‘다음 주 수요일 두 시 반에 학원으로 오세요’ 하더라.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혔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손주를 보고 싶어서 오라는 시간에 학원에 갔다. 그런데 결국 못 만났다. 하필 학원 수업이 그날 늦게 끝난 거다.”
입시기계가 된 아이들, 그 기계를 쉼없이 돌리는 부모와 교육제도.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그는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대학입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현행 대학수능시험을 폐지하고 대입을 대학 자율에 맡기자”는 제안이 그 첫 번째다. 경쟁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수능이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현 수능은 변별력을 잃었다는 이유다. 대학 자율에 대해서는 현재보다 더 파격적인 ‘100% 대학 자율권’을 제안했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재량껏 뽑고, 등록금도 마음대로 받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재원은 기여입학제가 답이다. 한국은 기여입학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데, 기여입학제는 사회안전망의 일환이다. 단, 기여입학의 비율을 분명히 정하고 기여입학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편법으로 이용되거나 사적으로 유용되지 않게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편 그는 ‘사립대의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그 재정을 국공립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양성하는 데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왜 국가가 모든 사립학교를 지원해야 하나. 사립학교 재정은 끊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나더러 미쳤다고 할 거다. 가뜩이나 등록금이 비싸서 난리인데 어떻게 대학에 가느냐면서 말이다. (그런 말 들을) 각오하고 하는 말이다. 단기적인 포퓰리즘에 편승하면 안 된다. 교육을 교육분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두면 안 된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여론과 소수의 의견도 존중돼야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 교육은 아니다. 집권 여당이 책임지는 자세로 결단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류대학에 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머지는 다 평준화에 찬성한다. 여론조사를 하면 당연히 평준화 찬성 비율이 월등히 높게 나온다. 하향평준화다. 눈높이를 거기에 맞추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다.”
윤 장관의 음성이 한층 고조됐다. 그는 “교육전문가들이 나를 두려워한다”면서 “교육전문가 말을 듣다가 열불 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만난 한 교육전문가는 한국의 교육 방향에 대해 ‘수월성과 보편성의 조화’라고 하더라. 이게 무슨 말인가. 특목고는 수월성 교육이고, 평준화는 보편성 교육이란다. 말은 좋다. 포퓰리즘의 대표적 양상이다.”
사립대학 재정 지원 중단은 ‘깔때기형 대한민국 학력구조’가 된 현실을 줄이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대학등록금이 과도하게 비싸면 대학에 꼭 갈 사람만 가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내가 가지고 간 주간조선 중 ‘깔때기형 인력구조 기업 비상’ 커버를 보며 말했다. “한국의 교육계도 깔때기형이다. 고학력자가 너무 많다. 피라미드형이 돼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은 대졸 이상 인력이 가장 많은 나라다. 산업현장 인력과 미스매치다. 지금 대학구조조정이 화두인데, 그 정도로는 안 된다. 현재 교육부는 정원축소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권유만 한다. 궁극적으로 400개 가까운 대학을 3분의 1 이하로 줄여야 한다. 100개까지로 줄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 안다. 사립대학이 폐지되면 잔여재산을 국고로 반환하게 돼 있기 때문에 사립학교 재단들이 학교를 어떻게든 지키려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비영리사단법인 및 재단법인 자본의 퇴로를 만들 수 있는 법적 장치도 구상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1%에 달한다. 행복지수 1위로 꼽힌 덴마크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윤 전 장관은 “왜 우리는 모두가 대학에 가려 하나?”라고 묻는다. 대학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며, 학습 역량과 의욕이 있는 일부의 학생만 가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는 “모두가 대입을 향해 돌진하는 현실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교 입시를 부활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얘기를 했다. “명문고가 있고, 일류·이류·삼류 학교가 있어야 한다. 1차적으로 고교입시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알아야 모든 사람이 대학에 매달리지 않아 사교육비가 줄어든다. 대학 가기 전에 자기를 알 기회를 주는 차원이다. 고등학교 입시 때 자신이 대학에 갈 사람인지, 전문직으로 갈 사람인지를 미리 판단하는 거다. 중학교 입시에는 반대한다. 치열한 경쟁의 무대로 뛰어들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연령 아이들은 충분히 성숙하다. 경쟁의 필요성을 아는 나이다. 경쟁을 터부시하면 안 된다. 경쟁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갈 수 없다. 다만 경쟁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그는 한편 “특목고 출신 학생들에게는 진로를 제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목고는 말 그대로 ‘특화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고등학교’인데 현실은 어떤가. 설립 취지와는 무관하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리고, 명문대 진학 등용문이 됐다. “특목고가 왜 생겼나. 해당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다. 외국어고등학교는 글로벌 시대가 왔는데 한국이 언어상 문제가 많으니 외국어 분야에 특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과학고는 미래의 과학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곳이고. 그런데 왜 외고·과학고·영재고 나온 아이들의 대다수가 법대, 의대로 몰리나. 내가 이 대목에서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고교입시를 없애놓고 왜 과학고나 영재고는 시험을 봐서 뽑나. 또 자사고는 뭐고. 고교등급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평준화를 지향한다면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윤증현 전 장관은 교육계 관계자라면 섣불리 하지 못하는 용기 있는 제안을 많이 했다. 그리고 교육계 인사들을 향해 쓴 소리를 여러 번 날렸다. 그의 제안의 면면을 보면 틀린 말은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 마피아’라는 말이 공공연한 교육학박사 천국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교육 문제는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라면서 교육개혁의 방법을 이렇게 제안했다. “입시제도가 해마다 바뀌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선현의 말씀을 새겨야 한다. 교육개혁은 장기적인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육개혁위원회 같은 총괄 기관을 만들어서 큰 틀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한다.”
<출처: 주간조선 2015.09.07 김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