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배려와 나눔` 10만명에 전했죠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리더에겐 선비정신 필요"
"'주향백리 화향천리 인향만리(酒香百里 花香千里 人香萬里)'라는 말이 있죠. 좋은 술 향기는 백리를 가고, 향기로운 꽃 내음은 천리를 가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갑니다."
지난해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찾은 사람이 10만명을 넘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지친 많은 사람들이 퇴계 이황과 만나면서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의 향기가 널리 퍼져나간 것이다. 퇴계의 삶이 구석구석 남아 있는 안동 땅에서 이들이 얻어간 것은 바로 '배려와 나눔'이었다.
2008년부터 선비문화수련원을 이끌어 온 김병일 이사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퇴계 선생의 철학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울림이 여전히 크다고 말한다.
"퇴계의 삶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거대한 성리학적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의 삶은 나보다는 남을 우선하는 삶이였죠. 유교적 질서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도 퇴계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어린아이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먼저 자신을 낮췄습니다. 퇴계는 최고의 리더십을 감동적으로 발휘한 선인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린 어떻습니까? 꿇어앉히면 안 되는 사람을 여전히 힘으로 꿇어앉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는 "퇴계는 근엄한 유학자라기보다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준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말했다.
"퇴계 선생은 모자란 둘째 부인이 늘 사고를 쳐도 나무라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보듬었죠. 맏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이 당연한 시대에도 늘 고맙다는 표현을 전하신 분이었습니다. 또 둘째 며느리를 개가(改嫁)시킬 만큼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중요한 관습과 체면보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배려를 더 중요시했던 거죠."
김 이사장은 "존경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정성을 들여야 한다"며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지금 궂은일은 먼저 나서서 하고 즐거운 일은 타인에게 양보를 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 대부분이 각 지역 선비들이었어요. 이들이 보여준 것은 바로 '선우후락'의 모습이었습니다. 최근 설문조사를 보니 선비정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5%가 넘었습니다. 세대별로 볼 때는 40대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책임감이 가장 많이 뒤따르는 사회의 허리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바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 크죠."
김 이사장은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선비정신'이 국가를 지켜 온 한 축이었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정체성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겸손한 자기수양과 남을 배려하는 인격, 이익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처세와 사심 없는 봉사로 표현될 수 있는 선비정신은 결국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자질도 결국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봅니다."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았던 김 이사장은 "선비정신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국가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자 보람"이라며 새해 포부를 밝혔다.
"올해는 퇴계 선생의 소망이었던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착한 사람이 많아지기를 소원한다)'가 더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배려와 나눔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하면 존경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회에 심부름한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봉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