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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자문위원, 자유칼럼그룹- 통계는 ‘비키니’와 같아서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8-10-22
  • 조회수1144
근래 ‘통계청장의 눈물’이라는 말이 여러 매체에서 회자된 바 있습니다. 황수경 통계청장이 이임식장(8월 27일)에서 아쉬움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정오의 어둠(Darkness at noon)’의 저자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1905~1983)가 “통계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Statistiken blutet nicht)”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필자는 ‘통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낱말이 지니고 있는 사회성을 염려하는 마음이 큰 게 사실입니다. 특히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일고 있는 ‘통계에 바람 넣기’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지난 몇 번의 선거 때마다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쳤던 여론조사가 그렇고, 이른바 ‘드루킹’ 사건도 결국은 통계학이 추구하는 원칙에서 벗어났기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남발되다시피 하는 이런저런 통계 수치에 비교적 ‘초연한’ 편인데, 그것은 학생 시절인 약 반세기 전 세계 통계학의 대부라는 교수로부터 ‘통계학은 무엇인가?’라는 특강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강의의 세부적인 내용은 이미 잊은 지 오래되었지만, 마지막 결론 부분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여러분, 통계는 ‘비키니(Bikini)’와 같아서 우리가 알고 싶고, 보고자 하는 부분의 비밀은 보여주지도 않고 볼 수도 없습니다!” 참으로 담백하면서도 드라마틱하기까지 한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키니’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마셜제도의 한 섬인데, 1946년에 원자폭탄 실험을 하는 장소로 유명해진 후 그 이름이 언론매체에 자주 오르내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한 디자이너가 전례 없이 옷감을 최대한 ‘적게’ 사용해 개발한 수영복이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기록에 의하면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레아르(Louis Réard)가 1946년에 발표함). 그러면서 이 수영복이 세상에 원자폭탄처럼 충격을 주길 바랐던 것인지,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패션 매거진에서는 물론 모든 매체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던 터라 ‘비키니’가 더욱 큰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금에도 필자는 여전히 ‘비키니’ 하면 ‘통계’가, ‘통계’ 하면 ‘비키니’가 절로 연상되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래저래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다양한 통계 자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즘은 그야말로 ‘통계 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통계 숫자를 보면서도, 그 수치가 갖고 있는 진정한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비전문가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필자 역시 그러한 통계에 너무 주관적인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여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통계 작업을 기획하는 주체인 ‘기획자’의 의도를 배제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자연과학 분야에서 통계 수치는 매우 객관적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연구 결과에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역시 그 결과를 대하는 프로젝트 책임자의 의도성과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통계라는 대상의 순수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인문사회학 분야의 통계 수치는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가 민감하기 그지없는 마음, 즉 심적 요소이기 때문에 파장(Wavelength)의 깊이와 폭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인문사회학 분야의 통계 수치를 관리하는 데 더더욱 객관성에 유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치적 개입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통계청장의 눈물’은 통계 수치의 정치적 해석 및 ‘손길’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기에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돌이켜보면 반세기 전 “통계는 ‘비키니’와 같아서 우리가 알고 싶고, 보고자 하는 것은 보여주지도 않고 볼 수도 없습니다.”라고 한 해학(諧謔)적인 말에 담긴 깊은 뜻을 되새기면서도, 통계학이 추구해야 할 객관성이 더욱 절실한 오늘입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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