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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자문위원, <마르코글방, 2019. 01. 30.>_ 마르셀 뒤샹, ‘변기로 편견의 벽 깨다’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9-02-15
  • 조회수1578
이성낙 자문위원님께서 '마르코글방'에 게재하신 "마르셀 뒤샹, ‘변기로 편견의 벽 깨다’"를 아래와 같이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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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변기로 편견의 벽 깨다
 
<마르코글방, 2019. 01. 30.>
 
이성낙
 
서울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왔다.
진귀한 작품들이 몰려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꽉 차게 하였다
(전시: 2018.12. 22. ~ 2019. 4. 7.). 오랜만에 정말좋은 작품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운 유화나 조각상들이 아니라 공산품들이 예술
작품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것들이다.
그 중심에 <>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변기가 우뚝 자리 잡고 있다.
 
작가 뒤샹이 남자의 변기1917년 뉴욕에서 독립예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가 주관하는 전시회에 조형물 작품으로 출품할 때의
여러 정황을 보면, 그리 자신만만하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첫째 그는 작
가의 이름을 떳떳하게 ‘Marcel Duchamp’라고 하지 않고 잡종 개[]를 뜻하
‘Mutt’을 원용한 ‘R. Mutt’이란 가명을 사용하였다.
 
당시 뉴욕의 위생용품 제조업자’ ‘Mutt’ 씨의 이름을 썼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는 당시, <(Fountain)>이란 작품명으로 출품하였다. 작가로서의 뒤샹은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자신을 숨기려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뒤샹의 출품작품은 전시 담당 심의위원회에서 전시될 수 없다는 결론 이 난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은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잡지에 익명인 R.
Mutt으로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는 모든 회원작가는 6달러를 지급하면
작품을 출품할 수 있다. 그래서 Richard Mutt<(Fontaine)>을 출품하였
. 그러나 어떤 토론과정도 없이 그의 작품은 사라졌고, 결코 전시된 바 없
.
 
본문이미지
<샘(Fountain)> 1917.
Marcel Duchamp(1887~1968) 作

 
 
 
 
 
 
 
"Richard Mutt<>이 어떤 이유로 거부되었는가?
1. 혹자는 작품이 비윤리적이다, 저속하다고 한다.
2. 다른 자는 위생용품 상점의 전시장에서 온 표절 품(Plagiat)이라고도 한다.
Mutt<>을 손수 제작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것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Moderne Kunst, Guenther Regel, Ernst Klett Verlag, 2001). 마르셀 뒤샹의 절규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마르셀 뒤샹의 작가 정신이 번뜩이는 순간이며, 개념예술(Conceptual art)
이라는 첫 해석을 정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작품이 아름다운가, 추악한가
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의 남자 변기작품이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화두를 던졌다고 한다. ‘변기가 예술품?’ 한 세기 전인 1917년에 뒤샹의 작품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하였지 않나 짐작하여 본다.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작가가 그 작품이 큰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기를 의도하였다면 적중한 셈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가 서서히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었다.
변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작가가 공산품(Ready made)남자 변기
작품이라고 주장하면, “우리가 작가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니 예술가의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그가 작품이라고 주장하면, 우리가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즉 당시 그 사회가 작가의 발상의 전환을 높이 평가하면서 예술성에 대한 열
린 마음, 즉 관용이라는 사회성을 끌어냈다는 사실이 변기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예술성이라 하겠다. 바로 마르셀 뒤샹이 바라는 편견 없는 세상에 대
한 갈망이 남성 변기 작품에는 묻어 있어 그 뜻을 더하고 있다.
 
특히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년 처음 선보였을 때, 파리 미술계는 썰렁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일부는 격하게 폄하하는 반응을 냈었다고 한다.
 
본문이미지
 <아비뇽의 처녀들> 1907.
 Pablo Picasso 作

 
 
 
 
 
 
 
 
 
 

그런데 당시 미술계는 물론 파리 문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인이자 소
설가, 극작가로서 이름 높았지만, 특히 미술평론가로서 대부역할을 하던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의 평론가로서의 설득이 없었
다면, 훗날 20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후담이 전해온다.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는 1904
년부터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만난 지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Kiki’s Paris, Harry N. Abrams, Incorporated, New York, 1989)
 
여기서 피카소와 뒤샹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두 거성의 탄생과정이 아주 다르
다는 점이다. 피카소가 아폴리네르라는 걸출한 미술평론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뒤샹은 자기의 철학을 홀로 대변하면서 외롭게 주장하였다는 점을 넘어, 일반
미술애호가들이 그의 예술적 도전을 관용이라는 키워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이다. 놀라운 반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남성용 변기가 시민들의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사실이
가히 놀랄 만하다라고 하겠다. 시민과 함께 끌어낸 새로운 사회개념이라
그 뜻을 더한다.
 
지난 2004년 이를 뒷받침하는 특종 외신기사가 날아왔다.
“2004129일 영국이 자랑하는 권위 있는 미술상 올해의 터너(Turner)
시상식에 참석한 미술계 인사 5백 명을 대상으로 현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파블로 피카소의
1907년 작 <아비뇽의 처녀들>일 거라는 예상을 깨고 마르셀 뒤샹의 <>
1위에 올랐다.”
 
이는 현대 미술이 꾸준히 추구하는 창조성과 발상의 전환이라는 명제 외에도
앞에서 말하듯 마르셀 뒤샹의 남자 변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관용(tolerance)
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의 남성 변기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다.
 
바로 그런 마르셀 뒤샹을, 그것도 그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작품
150여 점을 그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이곳 서울에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값지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뒤샹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용의 뜻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편견의 높은 벽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여 본다.
이번 마르셀 뒤샹 전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유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가천명예총장/프랑크푸르트(피부과학)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역임/뮌헨의대 졸/저서: "초상화, 선비정신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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