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주한 독일 대사 내외가 방한했을 때, 필자의 근작 한 권을 기념으로 증정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던 대사가 제 친필 사인을 부탁하기에 무심코 필기구를 찾아 손에 쥐는 순간, 앞에 앉아 있던 대사 부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필구(筆具)의 뚜껑을 열고 사인을 하자 이내 “저는 볼펜인 줄……” 하며 어색하게 말을 흐렸습니다. 요컨대 필자가 손에 쥔 게 볼펜이 아닌 만년필이라서 안도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공문이나 서류에 흔히 볼펜으로 서명하곤 하는 우리의 ‘관례’를 많이 봐온 대사 부인의 ‘순간 반사 반응’이었던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유럽에서는 중요한 서류에 서명할 때 필히 만년필을 사용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를 품격과 관련지어 생각합니다.
필자 역시 필기구인 만년필이 품고 있는 사회 정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하루는 만년필 관련 소모품을 구입하기 위해 시내의 한 대형 문고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익숙했던 만년필 코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만년필 코너가 없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판매 코너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게 아니라 아예 폐점했다는 것입니다. 황당하고 아쉬운 마음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찾는 고객이 없어서 본점 문고에서만 취급하기로 했답니다.
매사 경쟁 논리가 팽배한 우리네 사회에서, 만년필이 편리하고 다양한 필기구에 밀려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만년필 문화’를 이처럼 외면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엔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가 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품격’의 부재입니다. 근래 ‘품위’니 ‘품격’이니 하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에서 오가는 품위 없는 막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제 ‘무감각’해졌고, 법정 내에서 오가는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아니합니다. 심지어 사회 지도층이 ‘외국’에 나가서 ‘품격’을 손상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다음은 UN 기구에서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해 ‘외교관 특유의 냄새’가 온몸에 배어 있는 지인에게서 들은 일화입니다.
지인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체류할 때 일입니다. 하루는 그 나라의 고위직 인사와 한국 대사를 부부 동반으로 초청했답니다. 좋은 음식과 와인이 오가자 첫 만남의 무거운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한국 대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제스처가 커지기 시작하더랍니다.
심지어 대사는 대화를 하며 손바닥으로 동석한 귀빈의 부인 허벅지를 스스럼없이 동의를 구하듯 가볍게 터치하였답니다. 당사자인 부인은 물론 그 남편의 얼굴이 굳어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다행히 더는 추태가 ‘진척’되지 않아 지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 얘길 듣기만 해도 ‘진땀’이 났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본 지인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근래 필자는 독일 뇌(腦) 전문가 게랄트 휘터(Gerald Huether)의 저서 «품격이란 무엇인가(Was ist Wuerde»(2018)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일기본법 제1조에 나오는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Die Wue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를 인용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존엄’으로 번역한 ‘Wuerde’는 독일어권에서 ‘품격’과 동일하게 쓰이는 낱말입니다. 그만큼 품격에 대한 개념을 귀하고 높게 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저자 휘터는 “동물 세계에서 말(馬)을 보면, 야생에서 태어났든 마구간에서 태어났든 동일한 종이 된다”며 “말은 말일 뿐이다”라고 언급합니다. 반면 “사람은 인간 뇌의 입체성(Neuroplastizitaet) 때문에 신생아에서 집단 학살자인 히틀러가 나오듯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품격과 교육을 논하며 “품격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고 역설합니다.
필자는 ‘품격’이라는 가치가 개인의 것이든, 사회를 대표하는 정신적 산물이든 그 ‘품격’을 개인이나 사회가 어떻게 중시하고 가꾸며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 ‘편한 것이 좋고, 편하면 많은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정서가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품격’은 가꾸고 지켜야 할 것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귀찮고 짜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품위’, ‘품성’, ‘품격’이라는 낱말의 공통분모는 ‘규칙’, ‘규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사회 정서가 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 정서는 오직 세심한 사회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저자 휘터가 암시하듯 ‘품격’, ‘품위’, ‘품성’은 태어날 때 갖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교육의 산물인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초등생에게 연필도 아니고 더욱이 볼펜도 아닌 ‘만년필’을 선물합니다. 쉽게 쓰고, 쉽게 지우고, 쉽게 고쳐 쓰는 습관을 사회 교육 차원에서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얼마 전 “경제가 나빠지면 인간의 교양 수준도 저하되는지, 경북 경주 옥산서원에 소장된 서원의 지출부를 연도별로 배열해보면 종이의 질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장부를 적은 글씨도 달필에서 어린애의 졸필로 수준이 떨어진다.”(조선일보, 이영훈 명예교수와의 인터뷰기사(2017)를 인용한 ‘정숭호의 키워드’, (이투데이, 2018. 7.25.)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품격과 만년필’이라는 에피소드에 숨어 있는 ‘품격’의 메시지를 반추하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필자가 ‘만년필의 르네상스’를 소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품격거울’이 건재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