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사회 변화 따라가려면
학교 자율 존중하고 강화해야
사학의 학습혁명 선도 경험이
전 학교에 퍼지도록 이끌어야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입시제도에 이어서 자사고를 두고 교육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당시 자사고 제도를 입안하고 추진하였던 필자로서 국민께 죄송하고 참담한 심정이다. 간절히 바라는 점은 교육 갈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미래를 위한 교육 변화를 발목 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해서 늘어나는 인간 수명을 고려하면, 현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2100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할 세대지만, 우리 교육의 모습은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교육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플랫폼을 접목하고 교사들의 역할을 완전히 바꾸는 학습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도 교육 갈등을 최소화하고 미래를 위한 학습혁명에 집중하여야 한다. 자사고는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계의 합의를 바탕으로 1995년 발표한 교육개혁안에서 제시한 새로운 학교 모형에 뿌리를 두고, 김대중 정부에서 3개교로 시작하여 노무현 정부에서 5개교로 늘어난 자립형 사립고를 자율형사립고로 확대 발전시킨 제도이다. 자사고가 교육 갈등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세 가지 주요한 교육체제 변화에 있어서 사학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첫째, 교육이 사회 계층 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더욱 충실히 하도록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한 세대 만에 모든 아이에게 기초 교육을 받게 한 후, 경제 도약기에는 실업계 고교와 이공계 대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은 사례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학은 공립 못지않게 혹은 더 크게 교육의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미·영은 공립학교에도 자율성 확대 둘째, 교육이 경제·사회 변화에 발맞추어 지속해서 변하기 위해선 학교 자율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 변화의 동력은 정부가 위로부터 행사하는 힘만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으며, 학교가 중심이 되어서 아래로부터 나오는 자율의 힘과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학교가 정부 재정 지원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인가에 비례하여 자율이 부여되면서 대부분 사학이 공립보다 높은 자율을 가진다. 이러한 사학의 자율과, 이와 연계된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야말로 교육을 사회 수요에 발맞추어 변화시키는 동력이었다. 최근 미국의 차터스쿨(Charter School)이나 영국의 아카데미(Academy)와 같이 재정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공립학교에도 사립 못지않은 자율을 부여하는 추세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 차터스쿨이 교육 변화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사고도 자율형 공립학교와 마이스터고교와 함께 고교 다양화의 큰 틀에서 도입되었으며, 이들 학교부터 우선 자율을 대폭 늘리면서 궁극적으로 전체 학교에 자율을 크게 강화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추진되었다. 셋째,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문제 해결을 하도록 배워야 한다. 또 배운 것을 적용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평생학습자로 키워야 한다. 이렇게 학습의 본질이 바뀌면서 교육체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탈바꿈하는 학습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사학을 부정하고 모든 사학을 공립학교와 유사하게 만드는 획일적인 교육체제에서 학습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 교육체제가 대전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학을 조준하여 부정할 것이 아니라 사학도 다른 교육 주체와 함께 변화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서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교육대·사대생의 학습혁명 역량 키워야 자율형 사립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 학부모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고는 교육체제 변화의 맥락에서 가닥을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자사고가 당초 기대해왔던 만큼 변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사고 승인을 취소하고 제도를 폐지하기 이전에, 과연 자사고가 사회 이동성 제고에 기여하는 동시에 학생의 폭넓고 깊이 있는 역량을 키우는데 자율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전체 교육체제를 충분히 변화시켰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가 자사고 설립 후 지난 10여년 동안 얼마나 창의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현장과 적극적인 소통하면서 정책을 추진해 왔는지도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부터 먼저 깊이 반성한다. 첫째, 자사고가 사회 이동성 제고에 충분히 기여하기 위해서는 소외계층과 저소득층의 자녀들에게 더 활짝 개방하는 동시에 자사고가 일반고와 경쟁하면서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여서 모든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높은 파도가 모든 배를 동시에 들어 올리는 것처럼, 자사고가 일반고에 변화 모델을 제시하여 자극을 주는 한편, 일반고도 자사고만큼 과감히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자사고와 함께 도입된 마이스터고교가 직업기술교육 혁신을 선도하면서 전체 특성화고교의 질이 함께 높아진 사례에 주목하여야 한다. 마이스터고교의 혁신을 협약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처럼 장학재단과 같은 민간재단이 일반고의 혁신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우리 기업가들도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교육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장학재단들이 학생 수 격감 등으로 장학금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학교의 학습혁명을 지원하고자 해도 정부 규제가 금지하고 있다. 또 교육대·사대에 진학한 우수 인재들이 학습혁명을 선도할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교사가 되는 문제를 교육계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계가 교육부보다 먼저 교육대·사대 개혁을 공론화하고 변화에 나서야 한다. 학습혁명 선도 자사고에 기회 줘야 둘째, 학교 자율이 자사고에서 시작하여 모든 학교에 확대되도록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공립학교의 경우 자율형 공립학교에서 더 나아가 차터스쿨이나 아카데미처럼 학교 경영 자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대·사대가 직접 운영하는 부속 학교들은 실질적으로 학교 경영 권한을 교육대·사대에 전적으로 위임하는 수준까지 자율을 높이고 그 숫자도 늘려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욕을 가진 교육자들이 공립학교를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하고자 할 경우에도 재정 지원을 하면서 학교 경영을 위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최근 일반 사학마저 더욱 강한 규제와 통제로 숨 막히게 하고 있다. 많은 학부모와 전문가는 교육 현장에서 관료주의가 더욱 강화되면서 변화의 활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고 우려한다. 셋째, 학습혁명을 선도하려는 자사고에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경험을 전체 학교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추진하여야 한다. 필자가 의장으로 일하는 EWI(Education WorkforceInitiative·교육인력개발이니셔티브)는 베트남에서 하이터치·하이테크 학습혁명을 위하여 먼저 외국어학교 네 곳에서부터 지원을 시작하였다. 작게 시작하지만, 이들 학교부터 경험을 축적한 이후 베트남 전체 학교에 확산시키는 방안을 베트남 교육부와 논의하고 있다. 자사고가 AI 기반 맞춤학습을 도입하거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등 학습혁명을 선도하고자 할 때 기회를 충분히 주고 그 경험이 일반 학교에 퍼지도록 정부가 지원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학교로 자사고를 선택한 학생과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준 학부모, 그리고 재정 보조금을 받는 쉬운 길을 포기하고 자체 재원을 투자하여 특색 있는 학교를 운영하고자 한 교육자들이야말로 자사고 정책에서 가장 존중되어야 한다. 바로 개인의 자유가 학교의 자율과 미래 교육 변화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주호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장
출처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549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