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EU는 맞춤학습 확산하며
전략적으로 학습혁명 진전시켜
한국, 4차교육혁명 주도국서 빠져
여기서 뒤쳐지면 우리 미래 암담미국 비영리 교육 단체 립 이노베이션스가 추천한 맞춤학습 소프트웨어로 개인별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하는 학생들. [사진 립이노베이션스] 영국 언론인 앤서니 셀던은 인공지능(AI)이 교육을 완전히 바꾸는 4차 교육혁명을 주도할 5대 국가·지역으로 미국·중국·인도·유럽연합(EU)·영국을 꼽았다. 몇 년 전까지 교육 강국으로 주목받았던 한국은 빠졌다. 필자가 최근 미국 교육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국민에게 호소하였던 7~8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신감을 느꼈다. 지금 미국 교육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첫째,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에듀테크(EduTech)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공립학교들이 이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전무하던 에듀테크 벤처 투자가 10년 동안 급증하며 2018년 연 1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전 세계 에듀테크 벤처 투자 30억 달러 중 3분의 1이 미국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은 보건 분야에만 70억 달러 벤처 투자를 하는 나라여서 여력이 충분하다. 전문가들은 2020년 25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을 미국이 주도할 것으로 본다. 미국 공립학교들도 최근 활발하게 에듀테크를 교실에 도입하고 있다. 미국 에듀테크 미디어인 에드서지(EdSurge)에 따르면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필요에 맞추어 개별화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맞춤학습(adaptive learning) 기술이 20%가량의 미국 학교에 이미 도입됐다. 학교가 에듀테크 도입을 꺼리고 교사가 새로운 학습 기술 도입에 저항한다는 말도 미국에서는 옛말이 되고 있다.
에듀테크 기업들이 맞춤학습 제공 읽기 맞춤학습 소프트웨어인 아이레디를 활용해 읽기를 배우는 초등학생들. [사진 아이레디] 175개 학교와 11만1000명의 학생을 관장하는 볼티모어카운티학구(BCPS)는 최근 18개월 동안 교사·학부모·기업인과 지역 사회 지도자들과 수백 번의 인터뷰를 거쳐 맞춤학습 기술 도입을 결정했다.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동시에 교장·교사 연수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시범학교에서는 저학년부터 맞춤학습 소프트웨어인 드림박스(DreamBox·수학)와 아이레디(iReady·읽기)를 도입하였다. 에듀테크 기업들은 전문가들을 지역에 상주시키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도록 요구해 지역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맞춤학습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BCPS는 올해 말까지 모든 학생이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읽기 맞춤학습 소프트웨어인 아이레디를 활용해 읽기를 배우는 초등학생들. [사진 아이레디] 학생 수로 따져 제주도교육청보다 크고 울산교육청의 절반 정도인 교육자치단체가 모든 학생에게 맞춤학습이 가능하도록 과감하게 에듀테크를 도입한 것은 놀랍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학교들이 에듀테크를 원활히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단체인 립 이노베이션스(LEAP Innovations)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시카고에 기반을 둔 이 비영리단체는 파일럿 네트워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에듀테크를 도입하려는 학교들에 다양한 에듀테크의 체험 기회를 줘 맞춤학습 소프트웨어 중 개별 학교에 가장 적합한 에듀테크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미국에서 에듀테크와 함께 마치 쌍두마차처럼 학습혁명을 이끄는 것이 ‘학교 네트워크’다. 학습혁명은 최첨단 에듀테크 기술의 도입에 발맞추어 교사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가능하다. 그러나 개별 학교가 낡은 공장형 학습모델을 폐기하고 새로운 학습모델을 개별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국가가 새 학습모델을 제시하고 교육과정부터 교육 방식까지 일률적으로 바꾸는 것은 혁신가와 교사의 자율적 헌신과 창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많은 부작용만 낳는다. 그래서 새 학습모델을 발전시키는 학교 간 협력을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목들 융합한 프로젝트 수업 활발 수학 맞춤학습 소프트웨어인 드림박스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 [사진 드림박스] 미국 학교 네트워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NTN(New Tech Network)의 출발점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1996년 문을 연 나파뉴텍고등학교다. 이 학교의 모든 수업은 두 과목 이상을 융합한 프로젝트 학습으로 진행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다양하게 팀을 이뤄 심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학습을 함께 디자인하고 실행한다. 필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동료들과 나파뉴텍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 교실에서 두 명의 교사가 두 과목을 융합해 수업을 진행하면서 두 명 모두 강의하지 않고,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 학교는 대구시교육청과 KDI가 함께 추진한 대구시 학교들의 프로젝트 학습 모델이 되었다. 나파뉴텍고등학교가 주목받으면서 2001년 게이츠재단이 600만 달러를 지원해 NTN이 설립됐다. 지금은 200여개 학교를 지원하는 학교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NTN은 프로젝트 학습 모델을 지속해서 발전시키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과목 이상을 융합해 학생들에게 심층적 프로젝트 학습을 하도록 하려면 교실에서 프로젝트 학습을 지도해본 교사들의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된다. NTN은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하려는 학교의 교사 연수에 이 분야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을 보낸다. 동시에 프로젝트 학습을 통한 학생 평가·기록 등 교사들에게 유용한 자료들을 공유하는 프로젝트 도서관 에코(Echo) 학습 플랫폼도 운영한다.
세계는 학습혁명 나서는데 서밋공립학교는 여기에서 더 나간다. 서밋 학습플랫폼을 통해 프로젝트 학습과 개별 학습을 융합한 학습모델을 모색하는 한편, 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전역의 학생 5만4000명에게 보다 나은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같이 최근 미국의 학교 네트워크는 민간재단과 글로벌 기업의 지원을 받아 최첨단 에듀테크를 활용한 학습 플랫폼과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새로운 학습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은 수년 전까지 교육자치구가 1만3000여개나 되는 분권적 교육 체제가 교육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최근 에듀테크와 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미래 교육이라 부르면서 마치 먼 미래의 일로 여겨온 교육의 급격한 변화가 이미 미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가 엄청난 학령인구와 만만찮은 기술력을 가지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 EU와 영국도 지속해서 학습혁명을 전략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교육을 백년대계라 부르며 미래를 위한 교육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교육의 급격한 변화가 요구되는 학습혁명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미래를 보고 전향적으로 교육을 바꾸어나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해 학습혁명의 선두에 나서기 시작한 나라의 학생들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교육을 받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의 차세대를 압도한다는 시나리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의 현재 교육정책이 학습혁명 선도 국가의 비전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전을 체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이주호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장
출처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8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