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따라 온라인 학습 수요 다른데
대학에 20% 이상 온라인 강좌 금지
교육부의 각종 규제는 시대착오적
지식기업 전환 대학 나오기 힘들어
지식기업 전환한 애리조나주립대
주 정부 지원 대폭 삭감했어도
학생 2배, 연구비 4배 이상 증가
“교육 관료주의서 벗어났기 때문”“ASU는 재정의 9%만 주 정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 세미나실에서 20명이 넘는 한국 대학 총장 등은 마이클 크로 ASU 총장의 강의에 충격에 휩싸였다. 크로 총장의 말은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에 의존하여온 국립대는 물론 사립대마저도 정부 지원을 늘려 공영화하자는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나 크게 대비되었다. 2002년 재정의 38%를 주 정부에 의존하였던 ASU는 주 정부 지원이 재정의 9%까지 감소하였는데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등록 학생은 2002년 5만5000명에서 지난해 10만4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에 대학 연구비는 1억2000만 달러에서 5억4000만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또 최근 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평가받았다. 크로 총장은 “ASU가 주 정부 재정 지원 감축에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의 생존만이 최대 목표이고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만 하면 된다는 교육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지식기업(knowledge enterprise)’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두 배가 되는 데 100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사물인터넷(IOT)을 통하여 12시간 만에 지식이 두 배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대학은 사회 변혁과 경제 발전에 목적을 두고 학생들을 지식 생산에 연결해 학습하게 하는 동시에 대학 연구는 전공 간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사회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기업 대학에는 엄청난 시장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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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ASU가 주 정부 재정 지원 축소에도 학생 수가 지난 15년 동안 5만 명이나 늘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해외 학생과 온라인 학생의 규모가 3만 명 이상 늘어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학습과 같은 첨단 에듀테크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식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식기업으로 전환한 대학에는 무한한 시장이 열려있다, 전 세계 대학생 수는 앞으로 15년 동안 1억6000만 명에서 4억10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엄청나게 팽창하는 대학 교육 수요를 맞추려면 8만 명 규모의 대학을 매주 4개씩 15년 동안 만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ASU의 사례는 우리 대학에 큰 시사점을 준다. 한국 대학들은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생존을 위하여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지식기업으로 전환하는 대학이 나오지 못할까? 왜 우리나라 대학들은 과감하게 맞춤학습과 온라인학습을 도입하여 해외 학생과 평생학습의 무궁무진한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고 정부 지원에만 목매달고 있는 것일까?
대학 옥죄는 온라인 강의 규제
무엇보다 대학을 옥죄는 교육부의 규제와 통제를 걷어 내어야 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일반 대학은 온라인 강의가 전체 강좌의 20%를 넘지 못한다는 규제가 있다. 그러나 ASU에서는 학생들의 교수학습 영역을 크게 5개로 분류해 어떤 학생에게는 캠퍼스에 상주하도록 하여 교육을 하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주로 온라인을 통하여 교육한다. 이렇게 학생 맞춤형으로 하다 보니 온라인 학생의 평균 연령이 캠퍼스에 상주하는 학생들에 비하여 10세 정도 높다고 한다.
ASU는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가 GFA(Global Freshmen Academy) 과정을 도입하여 대학 1학년 전 과정을 국내외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게 하고, 해외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도입하려 한 대학이 있었으나, 만약 1학년 과정을 모두 온라인으로 하게 되면 온라인 강좌 20% 제한에 저촉되는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학생에 따라 온라인 학습에 대한 수요가 다 다른데 모든 일반 대학에 일률적으로 20% 이상 온라인 강좌를 금지하는 것은 교육 관료주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다 보니 사이버대학에는 오히려 오프라인 수업을 20% 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교육부가 사이버대학에 내린 가이드라인 중에는 심지어 교수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콘텐츠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ASU는 100명 넘는 전문가들이 교수의 온라인 강의를 지원하고 있고 온라인 공개강좌(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도 일부 과목에서는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보면 교육부의 온라인 강의에 대한 각종 규제와 통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렇게 대학이 알아서 판단하여야 할 것을 정부가 묶어 놓다 보니 한국에서는 지식기업으로 전환하는 대학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교육부 지원에 목매는 한국 대학
우리나라에서 교육 관료주의는 비단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사회 전체에 팽배해져 있다. 총장 등 대학 지도자들은 모든 것을 위에서 정해진 규칙에 맞추어 수행하는 관료적 행정에만 매달려 있다. 또 정부 재정 지원을 따기 위하여 지원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보직 교수뿐 아니라 관계된 모든 교수가 총동원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은 점점 더 교육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 관료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대학 총장 임기부터 늘려야 한다. 하버드대가 세계적 대학의 모델로 발돋움하게 되는 기간에 임기 30년 이상의 총장이 여러 명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마이클 크로 총장도 2002년부터 16년 넘게 ASU를 이끌며 대학 문화 자체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대학 총장 등이 ASU에 와서 3일 동안 세미나를 하면서 공통으로 주목한 것은 크로 총장과 함께 일하는 ASU 리더들이 총장의 비전을 철저히 공유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대학 리더들을 위한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교수들을 아무 준비 없이 대학 행정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소질이 보이는 인재를 길게는 1년에 걸쳐 다양한 멘토링과 학습을 거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교육 관료주의는 초·중등교육에서도 매우 심각하다. 세계적으로 낡은 학습 모델로부터 탈피하는 교실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학습혁명의 시대에 우리나라 학교들은 교육 관료주의에 발목이 잡혀있다. 교육부가 교육청에 많은 권한을 이양하였지만, 이제는 교육청이 학교를 더욱 옥죄고 있다.
와이파이 연결 교실 20% 밑돌아
우리나라 인터넷 인프라는 지하철에서도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될 만큼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그러나 2016년 와이파이가 가능한 학교 교실을 조사해보니 18.9%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어느 지역에서는 시장이 직접 나서서 교실에 무선인터넷을 설치하겠다고 제안하였지만, 교육청에서 반대하였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인터넷 중독을 우려하고 교사들도 학생들이 수업에 주목하지 않는 것을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한 교실의 학생들에게 디지털 중독이 더 적게 나타나고 학업 성과도 높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학생들이 디지털 교과서를 통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오히려 디지털 중독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와 교육청만 탓할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의 우려를 충분히 해소하면서 무선인터넷을 교실에 설치하고 디지털 교과서와 같이 에듀테크를 활용한 학습을 과감히 도입하는 변화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교장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고사시키는 교육부
최근 학습혁명의 주요 방향으로 교사의 교수학습 방식을 바꾸는 하이터치를, 교실에 첨단 에듀테크를 도입하는 하이테크와 결합하는 ‘하이터치 하이테크’가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듀테크를 정부가 바이오산업과 같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은 교육부가 에듀테크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학교에 가산점을 주어 스타트업들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에듀테크에서 앞서가는 영국은 교사에게 에듀테크 디바이스나 코스웨어를 살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한다. 이렇게 에듀테크 시장이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을 도입하기는커녕 정부가 오히려 직접 개발하고 현장에 이를 사도록 유인하는 정책은 에듀테크 시장을 말살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시급
교육청의 전체 예산 중 학습혁명과 관련한 지출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장 모범적으로 알려진 교육청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교실 수업을 위한 역량 강화, 사례 발표회, 협력 수업, 스마트 수업, 학내 전산망 구축, 학교정보실 기기 보전 및 관리 등을 모두 합해도 전체 예산의 0.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교육부와 교육청은 변화하는 시대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조직의 보전과 지시와 통제에만 의존하는 교육 관료주의에 깊이 매몰되어 있다.
해외에서 지식기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데에는 지식이 힘이자 경쟁력이기 때문에 지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분야인 교육계가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릴 만큼 급격히 변하는 기술과 사회 변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을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내려면 교육부와 교육계 전체에 퍼져있는 교육 관료주의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이주호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장
출처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05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