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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살아나도 유럽 금리상승 당분간 없다
유럽중앙은행(ECB) 본부에서 사공일 바른사회운동연합 고문(오른쪽)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만나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사진 유종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이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이 여전하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마침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양적완화(QE)를 실시했다. 가장 의미심장하면서도 민감한 시기인 지난 10일 사공일 본사 고문 겸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드라기 총재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사공일=매일 드라기 당신을 보고 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다. (웃음) ECB가 유로존 경제 전망을 최근 발표했다. 그렇더라도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은 당신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마리오 드라기=유로존 경제가 회복되고 있기는 하다. 다만 회복 속도가 느리다.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같은 지표 예측치를 상향 조정했다. (QE 등) 우리의 통화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했을 때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다.
▶사공=구체적인 전망치를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게 좋겠다.
▶드라기=통화정책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면 물가상승률이 ‘적당한 기간’이 흐른 뒤 연 2%에 근접할 전망이다. 가장 최근 예측에 따르면 2017년에는 2%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사공=QE 등 통화정책이 없다면 물가상승률이 2% 가까이 되려면 훨씬 더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올 2월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0.3%였다).
▶드라기=그렇다. 2017년에는 1.8% 정도의 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 요인은 있다. 내가 보기엔 두 가지다. 첫째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다. 둘째는 구조 개혁의 미진함이다. 그런데 최근 석 달 사이에 두 가지 위험은 줄었다. 대신 예상치 않은 긍정적 요인이 그 기간에 늘어났다. 예를 들면 최근 경제심리지수는 최근 7년 사이 최고치였다. 현재 경기회복 흐름이 탄탄해지고 있다는 의견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통계자료를 보면 회복세는 아직 완만하다.
▶사공=이제 막 ECB의 QE가 시작됐다. 미국에선 QE가 성공적이었다. 이유가 있다. 미국이 QE를 시작했을 때 미국의 장기 금리는 연 3.5% 수준이었다. 반면 유로존의 경우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등의 장기채 금리가 아주 낮다. ECB가 QE를 실시해도 금리가 낮아질 수 있는 폭이 크지 않다. 당신은 어떤 통화정책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를 통해 QE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는가.
▶드라기=우선 우리 QE는 시장에서 예측됐던 일이다. 이미 채권과 주식 가격에 상당히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장기 금리가 낮아졌다. 장기채 금리가 상당히 평평해졌다. 하지만 단기 금리는 (QE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이 어느 순간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QE 실시 전엔 경기가 회복되면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운 전망이었다. 하지만 QE 실시로 경제가 회복돼도 금리가 금방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QE가 선제 지침(Forward Guidance)을 강화시켜준 셈이다.
▶사공=당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조 개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옳은 말이다. 노동시장 개혁과 창업 등을 위한 규제 개혁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투자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개혁을 위해선 정치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그런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가.
▶드라기=어떤 측면에선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반면 또 다른 측면에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과 (재정위기 절정이었던) 2년 전을 비교해보면 많은 점이 좋아졌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이 구조 개혁을 많이 했다. 이제 우리는 재화와 서비스시장 개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일부 회원국이 결단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내부적으로 정치적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압력도 커지고 있다.
▶사공=그리스와 채권자인 트로이카(EU·ECB·IMF)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트로이카의 한 축인 ECB는 그리스 사태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드라기=그리스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따라 여러 개혁 작업을 벌였다. 지금은 그리스가 기로에 서 있다. 현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긴축 프로그램 전체를 뒤흔들 수 없고, 부분적으로 새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공=최근 나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 등과 세계 경제 현안을 놓고 우리가 지금 하듯이 토론했다. 스티글리츠는 “그리스의 현재 상황이 구제금융 이전보다 악화됐다”며 “구제금융 프로그램과 트로이카의 개혁 압력이 그리스 이익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대한 당신의 설득력 있는 빈론은 무엇인가.
▶드라기=스티글리츠 등은 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잊어버려라”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디폴트를 선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장은 디폴트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티글리츠는 아시아 금융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당시 수석 부총재인 스탠리 피셔(현 연방준비제도 부의장)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디폴트 사실이 잊힐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비판한다. 하지만 디폴트를 선언한 나라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다.
▶사공=아시아 금융위기 때 난 경제정책 담당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이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연기) 대신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모라토리엄의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었다. 한국이 고통스러운 구조 개혁을 해 한국 경제가 최근까지 잘 버티고 있다.
▶드라기=아시아 금융위기의 순간 나는 한국에 있었다. 그전에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는 절망스러운 순간이었다. 한국인의 희생은 엄청났다. 그런데 위기를 가장 잘 대응한 나라는 한국처럼 사회적 동질성이 높고 분배 측면의 불균형이 적은 국가를 말한다. 고통을 분담하지 않은 소수가 거의 없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달랐다. 정책 담당자 등이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 때 공정성(Fairness)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공=유럽연합(EU)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특히 유로존 회원국은 19개다. 재정·정치 통합이 없는 통화동맹이다. 5년 전엔 거의 기대할 수 없었던 금융동맹도 성사되는 등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유로존이 ‘너무 적게, 너무 늦게(Too little, too late)’ 대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EU가 재정과 정치동맹으로 크게 진전될 것으로 보는가.
▶드라기=통합 작업은 꾸준히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재정동맹 등) 어떤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EU 협정을 고쳐야 할 때가 가장 어려울 수 있다. 이는 정치적 과정이다. 내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사공=당신의 영역이었으면 좋겠다. (웃음) EU의 경제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EU가 잘되면 세계 전체가 좋다.
▶리비오 스트라카 ECB 국제정책분석국장=(드라기 왼편에 앉아 대담을 경청하다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사공 이사장에게 질문 하나 하고 싶다. 요즘 주요 20개국(G20)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사공=G20 정상회의는 2009년 시작됐다. 최근의 G20 정상회의의 성과가 실망스럽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계는 글로벌화가 심화돼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이 더욱 커졌다. 국가끼리 긴밀한 협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G20은 이러한 협력을 위해 아주 좋은 기구다. 예를 들면, 미국·유로존·일본 등 주요국의 QE가 각국에 미치는 영향도 G20에서 논의돼야 한다.
▶드라기=정확한 지적이다. G20이 아주 유용하다는 점은 증명됐다. QE 등의 문제를 두고 다른 나라들과 소통할 때도 아주 좋다.
정리=강남규 기자
Mario Draghi(마리오 드라기)
● 1947년생 ●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 전 금융안정위원회 의장 ● 전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 전 세계은행 이사 ● 전 골드먼삭스 부회장 ● 매사추세츠공과대 경제학 박사 ● 로마 라사피엔자대 경제학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