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운동연합의 오세정 교육개혁추진위원께서 소중한 의견을 보태주셨습니다.
[장세정의 직격 인터뷰]
[초유의 코로나 학기 마친 오세정 서울대 총장]
교수도 대학도 코로나 위기 맞아
변화에 적응 못하면 확실히 도태
학과별로 대면 수업 재량권 검토
등록금 반환은 논의 결과 따라야
입시 때 학생들 잠재력 집중 평가
국가도 대학도 장기비전 절실해
원본보기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지난 24일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도 문을 닫지 않았던 중앙도서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코로나 상황을 봐가며 2학기에는 대면-비대면 수업 재량권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대학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상 초유의 '코로나 학기'가 지난주 대부분 종강했다. 코로나19는 각 대학은 물론 교수·학생·교직원과 학부모들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강요했다. 신입생들은 학과 친구와 교수를 못 만났고, 신입생 환영회와 모꼬지(MT)도 생략했다. 학수고대한 캠퍼스의 낭만은 신기루가 됐다. 교수는 난생처음 컴퓨터 앞에서 밤새워 만든 PPT로 끙끙대며 인터넷 강의(인강)를 진행했고 너무 힘들다며 투덜거렸다.
코로나19는 우리 대학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대학 구성원들은 그 속에서 어떤 자극을 받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모색 중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오세정(67) 서울대 총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6·25전쟁 70주년을 앞둔 지난 24일 호암교수회관과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해 어쩌면 2학기도 코로나 학기가 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곡절 많았던 첫 코로나 학기가 끝났다.
"한국사회도 대학들도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대학의 비전을 수립하고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면서 동시에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대는 매주 코로나대응 TF 회의를 열었다."
-'코로나 학번' 신입생들을 보면 측은하다.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등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다. 이런 사회적 과정을 통해 교육과 연구가 활성화되고 창의적 지식이 창출될 수 있다. 신입생들의 경우 선배와 동급생끼리 친밀감과 우정을 다질 기회가 없었고, 동아리 등 다양한 학생 자치 활동을 경험하지 못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 건강권을 보호하는 범위에서 지식 축적과 캠퍼스 생활을 최대한 즐기고 구성원끼리 상호작용이 활발해질 방안을 찾고 있다."
-총장 취임 2년 차에 코로나19가 터져 많이 원망했을 듯하다.
"취임 전에 약 7개월간은 총장 부재라는 비정상 상태였다. 첫해엔 학교를 제대로 된 트랙에 올려놓으려 노력했다. 그동안 해결 안 하고 쌓아온 문제들을 많은 부분 정상화했다. 취임 첫해에 서울대의 공공성 실천 방안의 하나로 국가 싱크탱크 역할을 목표로 하는 'SNU 국가전략위원회'를 발족하고 올해엔 많은 사업을 본격 추진하려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와중에 서울대의 혁신 사례가 있다면.
"솔직히 그동안은 위기 대응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 대학들은 대부분 폐쇄했지만 우리는 정상 근무했다. 대면 강의만 못 했을 뿐 연구를 계속했더니 외국의 교수들이 '굉장히 잘한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에 국·영문으로 '코로나19 연구 및 소식'이란 특별 페이지를 제작했다. 과거에는 우리가 선진국을 쫓아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번에는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이 가장 큰 발전이다. "원본보기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노트북으로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성균관대가 먼저 혁신하면 다른 대학들이 따라가고 서울대가 제일 늦게 도입한다는 말도 들린다.
"(전자공학과 교수 출신 신동렬 총장 주도로) 성대가 인강을 제일 먼저 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서울대의 역할은 뭘까. 앞서 나가는 선발대가 있고 서울대는 본진(本陣)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가 하면 다른 대학에 선례가 되니까 좀 신중하게 실수하지 않고 가야 한다. 모든 일을 할 때 조심스럽고 앞뒤 파급효과를 따져야 한다. 선발대로 나서는 것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면 솔직히 쉽지 않다."
이제 세상은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확연히 나뉜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신기원이 됐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대학은 무엇이 달라졌나.
"온라인 강의를 원하지 않았던 교수들도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강의를 강요받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교육은 온라인의 장점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에 달렸다. 무크(MOOC) 같은 정도가 아니고 우리 학생들을 직접 가르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어떻게 잘 조화해 가장 효율적으로 할 거냐 그런 능동적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대학 교육의 강의 방법은 대면과 비대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장점을 적절히 혼합한(Blended) 하이브리드 형태가 될 것이다."
-교육부의 획일적 비대면 지침 대신 대학에 대면 교육 재량권을 줘야 할 텐데.
"코로나가 어느 정도 통제될 경우 재량권을 발휘하는 게 맞다. 서울대도 초기에는 1000명 이상이 모이면 교육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최근엔 음대·미대 등이 대면 수업을 했고 기말고사도 대면 시험을 치렀다. 대면과 비대면 수업 병행 시기는 학교가 일정 기간을 정하거나, 학부·학과에서 교과별 특성에 맞게 결정할 재량권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비대면 강의에 대해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중간에 설문조사를 했더니 교수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적다는 거다. 잘 몰랐던 부분은 동영상 강의를 반복해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하더라. 줌(ZOOM)과 녹화 수업 중에 학생들은 편할 때 찾아볼 수 있는 후자를 선호한다. 기말시험 끝나고 다시 설문을 진행 중이다."
-교수들도 인강을 아주 힘들어하던데.
"인강은 아무래도 교수들이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된다. 대면 강의 때는 학생들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다시 한번 설명하고 농담도 한다. 피터 드러커가 1997년 '대학캠퍼스가 30년 뒤에는 유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미국 교육학자들 사이에 큰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모두가 비대면 강의를 하는데 인강은 지식을 전수할 수는 있어도 교육은 그것과 또 다른 측면이 있다."원본보기 사상 첫 '코로나 학기'를 마친 서울대 캠퍼스의 본부 건물에서 바라본 중앙도서관. 오세정 총장은 2학기에도 코로나 학기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
"대학과 초·중·고가 모두 인강하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학교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인강의 질이 약간 부족해도 지식의 전달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대학교육은 지식 전수 외에 인격 형성 과정에서 사회적 측면도 중요하다.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하고 같이 배울 수 있다. 대학교육은 앞으로 바뀔 것 같다."
-어떻게 바뀔 거라 전망하나.
"코로나 이후 변화에 적응 못하는 강사와 교수는 확실히 도태될 것이다. 직업교육 등 지식의 단순 전수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은 굉장히 힘들어질 거다. 교육에서 대면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는 없어지지 않을 거다. 무크가 등장해도 서울대 같은 곳이 살아남는 이유가 있다. 지식과 여러 가지 경험을 겸비한 교수들은 계속 필요할 거다. 다만 다시 대면 강의를 하더라도 강의실에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들은 등록금 반환을 주장한다.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다만 서울대는 재정의 45%를 정부가 지원한다. 등록금 반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한 문제는 정치권과 정부 논의 결과를 봐야 한다."
-고교 수업이 부실해져 이번 입시에서 대학들이 고3보다 재수생을 선호할까.
"서울대는 그런 것 없다. 수능처럼 객관적인 시험을 보면 당연히 준비 많이 한 재수생들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런 문제가 있으니 역차별을 막는 게 고민이다. 학생들의 잠재력은 바뀌지 않았을 텐데 서울대는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파악해 뽑을 것이다."
-가을에 2차 대유행이 오면 2학기도 '코로나 학기'가 될 텐데.
"신규 환자 수가 줄지 않고 백신도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2학기가 지금보다 특별히 좋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다각도로 대비하고 있다."
-교육부는 왜 2학기 방침을 미리 제시하지 않나.
"1학기 때 굉장히 고민했던 것이 불확실성이었다.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이 하도 많이 변하고 비용이 따르니까 학기 초에 신속히 수업 방침을 못 정했던 거다. 아마 교육부도 시나리오가 있을 거다. 지방 학생들 숙소 마련을 위해서라도 2학기 때는 최대한 일찍 정책결정을 해줘야 한다."
오 총장은 20대 국회(비례대표)에서 교육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간사를 역임했다.
-우리 정치가 코로나 이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어느 조직이나 장기 비전과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게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잘살아 보세'가 사회적 합의였고, 그 이후에는 '사람답게 민주화해 살자'는 게 합의였다. 지금은 합의가 없으니 갈등이 넘치고 그 와중에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질문했더니 오 총장은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이튿날 오전 6시 45분 오 총장이 직접 문자를 보내왔다. "국가 비전으로 '함께 앞서갑시다'가 어떨까요. '함께'는 공동체 의식을 말하고, '앞서갑시다'는 이제 맹목적으로 선진국을 따라가려 하지 말고 우리가 선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원본보기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출신인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유학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정답을 맞추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창의적 교육을 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변선구 기자◇오세정 총장=1953년 서울 태생. 어릴 때 꿈이 노벨상 수상자였다. 경기중·고 수석 입학·졸업, 대입 예비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본고사 수석 등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에 유학 가서 보니 내가 정답은 잘 찾아도 질문은 참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요즘도 창의적인 교육을 역설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소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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