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의도시산책] ‘재건축’이란 이름의 돈잔치
[이건영의도시산책] ‘재건축’이란 이름의 돈잔치
(2022.03.01. 세계일보게재)
√ 용적률 대폭 늘려 고밀도 건설
√ 집·시설 등 더 지어 팔기 혈안
√ 아파트 놓고 돈먹기 게임 매몰
√ 도시 리사이클 순기능 외면
최근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였다. 오세훈표 재건축 1호란 딱지가 붙었다. 그동안 볼모로 잡혀 있던 은마아파트, 압구정동 아파트들도 들썩일 것이다. 이어서 줄줄이 재건축 바람이 불지 않을까.
아파트 재건축은 돈잔치다. 아파트 놓고 돈 먹는 게임이다. 아파트는 토지와 건물로 이루어진 상품이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가상각이 발생한다. 수명이 다하면 잔존가치만 남는다. 그런데 벽이 갈라지고, 녹물이 흐르고, 연탄아궁이를 쓰는 구식 아파트가 그 옆의 산뜻한 아파트보다 더 비싸다. 낡으면 고쳐 써야 할 터인데 일부러 보수도 하지 않는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이 개발될 당시 주택공사는 세계은행의 차관을 빌려와 강남 여기저기에 아파트단지를 지었다. 아직 아파트 선호도가 높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일부 지역은 저밀도지구로 지정하여 5층짜리를, 다른 지역은 중밀도지구라 해서 15층 내외를 지었다.
그리고 30, 40년 세월이 흘렀다. 개발연대를 지나면서 도시계획도 바뀌고, 법규정도 바뀌고, 주거선호도도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용적률이다. 정부는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주거지의 용적률을 높여주었고, 인동간격, 사선제한 등 건축규제도 완화해 주었다.
재건축의 계산법은 쌈박하다. 당초 40년 전에 용적률 100% 또는 150%로 지은 아파트를 지금은 300%까지 지을 수 있어 2∼3배를 더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잠실5단지 계획안을 보면 현재의 3930가구가 6815가구로 늘어난다. 각자 집 평수를 크게 늘리고, 남는 2900채를 팔면 수조원의 건축비와 환급금이 마련된다. 마술 같은 머니 게임이다.
아파트 건축은 용적률 게임이다. 보통 베란다 확장이란 꼼수로 가구당 3∼5평(약 9.9∼16.5㎡)씩 더 짓는다. 신시가지만 한 대형 부지 내에 자동차길은 있어도 도시계획상 도로는 없어 부지 전체가 대지로 계산된다. 그러니 실제 건축용적은 그만큼 늘어난다. 또한 건축법상 지하면적은 용적률 계산에서 빠지므로, 반지하공간을 만들고, 지하는 왕창 파서 주차장, 헬스장, 수영장, 사무실, 사우나, 찜질방, 카페, 창고 등 편의시설을 넣는다. 봉이 김선달식 셈법이다.
수익이 커지니 갈수록 재건축단지마다 호화 경쟁을 벌인다. 건축재료를 고급화하고, 층고를 올리고, 외벽에 대리석을 붙이고, 스카이라운지, 스카이브리지를 만들고, 정원에는 인공분수가 설치된다. 쏟아지는 돈벼락에 비하면 건축비는 별거 아니다. 그래서 새 아파트가 등장할 때마다 연식(年式)을 내세워 집값을 부추긴다. 이런 판세가 벌어지니, 서울의 모든 낡은 아파트는 조합 측에서 만든 화려한 투시도를 바탕으로 ‘미래가치’를 미리미리 선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속삭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알파) 다오.
왜 개발이익이 생기는가? 용적률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30, 40년 전 단지계획을 세우고 이것이 도시계획으로 확정된 것인데, 재건축을 위해 주거지역의 기준에 따라 다시 지구단위계획을 만드는 것이다. 즉 저밀도 또는 중밀도 아파트단지가 용적률 300%로, 35층, 심지어 5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숲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계획은 정부의 권한이다. 이 같은 계획 변경으로 인한 이익이라면 개발이익이 맞지 않을까?(개인의 재산권 행사로 발생하는 이익이라는 주장도 있다.)
개발이익은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라 재건축부담금이 부과된다. 국토부에서 2018년 1월 강남의 5개 대표적 단지를 조사한 결과 예상 부담금이 가구당 4.4억∼5.2억원이었다. 즉 예상 수익은 두 배인 8.8억∼10.4억원. 4년 후인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높아졌을 터. 그렇지만 가장 큰 이익이 예상되는 반포주공1, 2, 4주구는 부담금 면제 혜택을 받았는데, 과연 부담금 징수가 가능할까?
지금 재건축 바람이 솔솔 일고 있는 목동, 분당 등 신도시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당초 이곳은 도시계획 시 계획인구에 맞춰 각종 도시 인프라를 설계하고, 건물의 높낮이나 밀도, 배치 등에 변화를 주어서 단지마다 용적률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단지들이 서로 ‘다름’이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용적률 ‘똑같이’, 높이 ‘똑같이’를 고집한다. 목동 등지의 2종주거지는 이미 3종주거지로 종상향되었다. 잠실단지 가로변은 준주거지로 용도상향되었다. 누가 이들의 잔칫상을 막으랴!
앞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잠실동, 잠원동, 송파동, 둔촌동 등은 물론 분당, 일산 등 일대가 모두 고밀도촌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서울은 세계 제1의 고밀도시가 될 것이다. 구조학자들은 콘크리트의 수명이 무한이라는데, 우리는 짓고 부수고, 짓고 또 부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정부는 처음 더 많은 주택 공급을 위해 개발이익을 크게 안겨주고, 대신 공공용지를 기부채납받거나 부담금을 징수하는 식의 ‘나눠먹는 공식’을 만든 것이다.
이쯤에서 재건축 정책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재건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착한 이재술(理財術)이다. 재건축에 의해 도시를 리사이클시키고, 지속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40년 후, 다시 40년 후, 재재건축, 재재재건축할 때마다 이런 식일까? 제발, 100년, 200년 후의 도시를 생각해보자.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 2022-03-02 | 조회 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