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기대한다
한미일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기대한다
윤 석렬 대통령의 최근 미국국빈 방미기간중의 뉴스가 연일 국민들 마음을 즐겁게 한바 있다. 백악관에서 돈 매클레인의 American Pie를 원어로 멋들어지게 불러 참가자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 바이든 미 대통령은 매클레인의 사인이 새겨진 기타를 윤대통령에게 선물하며 우의를 다졌다. 노래도 정감이 넘쳤지만 작고한 바이든 대통령의 장남 보 바이든이 좋아했던 노래라 더욱 뜻이 깊었다고 한다. 이어서 상하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윤대통령의 영어연설은 내용도 훌륭했고 발음도 훌륭해서 56회의 박수와 23회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연설이 끝난 후 미국 국회의원들의 싸인 요청과 셀카촬영 요청으로 의회 문을 나서는데 10여분 이상의 시간이 지연되었다고 했다. 미국은 특히 한일관계를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한 윤대통령의 외교행보에 큰 만족을 나타내며 경제. 안보. 기술 등 한층 강화된 협력시대를 함께 열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내었다. 윤대통령의 백악관에서 노래한 것에 대해서 국제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된 것 같다. 영국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거행된 찰스왕의 대관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각국 정상들로부터 윤대통령의 미 백악관노래에 대해 많은 감동과 칭찬이 있었다고 전 해 온 바 있다.
윤 석렬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일본에서 개최된 G7정상회의 때 기시다 일본총리와 다시 만나 윤대통령의 취임 1년 정도 지난 짧은 기간에 벌써 세 차례나 (첫 번째는 지난해 6월 스페인 나토 정상회의 시, 두 번째는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동남아국가연합(ASEAN)정상회의 시) 3국 공동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다시 3국 공동정상회담을 위해 한일 정상을 워싱턴으로 초청한 바 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윤대통령 출범한 지 10일 만인 이미 지난해 5월 10일 만에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하고 삼성전자의 평택공장을 방문한 바도 있다. 과거 한미일이 이렇게 긴밀하게 만나고 상호 협의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한미일이 긴밀하게 된 것은 윤대통령의 통 큰 결단으로 한일관계 정상화선언과 지난 3월 윤대통령의 일본방문에 이어, 5월의 기시다 일본총리의 방한으로 그동안 12년간 끊겼던 한일 간의 셔틀외교가 복원되는 등 한일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나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 진전을 크게 환영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에서 윤대통령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으면 8순의 노인이 윤대통령께 달려가 악수를 하고 귓속말로 환담을 했을까? 이 영상을 보는 우리 국민들은 매우 흐뭇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히로시마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미 백악관은 특별히 윤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양국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한 바 있다. 한미일이 새로운 유대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탄탄한 안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산업기술 분야의 공동협력 나아가 공급망 구축 등
제반 협력관계를 성숙시켜 나간다면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이 반기는 이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에게는 끝없는 반일 감정을 드러내고, 안보는 미국에게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과 돈독히 한다는 어중간한 중간자적 자세를 취해온 것에 비하면 이번 윤대통령이 방일과 방미를 통해 환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것은 우리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의 첫 출발은 그간 한일 간의 현안으로 발목 잡아온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문제를 윤석렬 정부가 제3자 보상방식으로 대승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물꼬를 텄다고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양국 간의 골치 아픈 문제였던 위안부 문제를 미국의 중재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일본과 합의하고 양국 정부가 공동 발표하였는데 이를 통해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포하고 일본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위안부 재단 출연금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또 2016년 7월에는 우리정부가 위안부 합의이행을 위하여 화해.치유재단도 일본이 제공한 10억엔을 재원으로 설립하였다. 외교부의 TF에 따르면 정부가 파악한 위안부 피해자 47명 가운데 36명은 위로금을 (생존 피해자 1명당 1억 원씩) 받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2019년 연말까지 35명은 이미 돈을 수령했다고 한다. 그 후 정부가 바뀌면서 화해치유재단도 2년 만에 해체되었고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판결은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한국의 태도변화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등 경제보복을 가하였다. 우리도 일본을 WTO에 제소하고 우리의 화이트리스트에서도 일본을 배제하고 2016년 체결한 지소미아를 2019년 종료를 발표하는 등으로 역사 갈등이 경제 안보갈등으로 확산되었다.
2018년 문재인 정부하의 김명수 대법원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전범기업이 우리나라 피해자에게 보상하라는 판결은 1). 일본 기업에 대한 효력이 미치는 판결은 일본 법원에서 하여야 한다는 재판 관할권 문제를 무시한 판결일뿐더러 2).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의 양국 간 조약에 위배된다는 문제도 있다. 최근 대법원과 헌재의 잇단 잘못된 판단은 우리 법질서 신뢰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앞으로 사법당국의 정상화를 기대한다.
위안부 보상과 관련하여 필자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이한빈 전 부총리는 이승만 대통령시절 재무부의 예산국장, 차관 등 고위직을 역임하셨던 분인데 당시 한일 청구권문제 협의를 위하여 일본에 요구할 금액으로 위안부, 징용공 등 미불 금액을 조사해 보니 2,000만 불에는 턱없이 모자랐는데 일본 측은 기록을 정리하여 약 2,000만 불을 보상하겠다고 해서 일본의 기록문화에 탄복하였다고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박정희 정부시절인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 협정은 미국이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강화해야겠다는 판단에 따라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해 이승만 정부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많은 금액을 청구권 자금으로 받게 되었다. 한일 협정은 이승만-장면 정권에서 9년간 박정희 정권에서 5년간 타결한 결과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7년거치 13년 분할상환, 연리 3.5%, 당시 우리나라금리는 25%내외), 유상민간차관 3억불 등 총 8억불의 자금을 공여 받았다. 이는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 21억 5천만 불의 3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일본은 우리 민간인에 대한 보상은 직접 하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법적근거에 대한 양국 간 견해 차이, 증거자료의 분실, 사실관계 입증의 곤란 등을 들어 한국 정부가 일괄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그렇게 성사된 것이다.
위안부등 피해보상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1974년 특별법을 제정하여 피해사례 83,519건에 대하여 92억 원(청구권 자금의 9.7%)을 지급한 바 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이것이 너무 적다고 판단하여 검토한 결과 한일 조약상 일본에 요구할 수는 없어 우리정부가 재정에서 다시 7,800명에 대하여 약 6,500억 원을 보상 한바 있다. 그 후 대법원의 2018년도 문제의 판결이 나오자 전후 사정을 잘 아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법조인다운) 해결책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한.일 기업들이 자발적인 성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발의를 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근 제3자 배상 방식에 의한 해결은 매우 현명한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해 보자. 해방 후 78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8년이 지난 지금 80년 이상 전의 문제로 배상이든 보상이든 겨우 몇 명의 문제로 겨우 많아야 십 수억 원의 문제로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원료 등 소재 부품 수입규제를 받고 무역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고 지소미아 등 안보 협력에 위해를 가하는 그런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청구권자금 8억불은 경제기획원의 주일 청구권사절단에 의해 도입이 추진되었는데 청구권사절단은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의 청구권 자금 집행내역을 자세히 밝힌 청구권자금 백서를 발간한 바 있다. 포항 종합제철공장은 무상 30,800천 달러와 유상 88,680천 달러 합계 119,480천 달러가 소요된 핵심건설사업이다. 소양강댐건설 사업(21,613천 달러), 대청댐 등 댐 건설과 경부고속도로건설 등 사회 간접자본 건설도 가장 중점을 둔 분야였다. 백서는 농업용수 개발, 농업증산, 축산 장려, 농기계화 등 농수산부 사업, 수산진흥, 어선도입 등 수산청 사업, 과학기술 실습시설, 서울대 병원 의료시설 등 문교부 소관사업, 원자력분야를 포함하는 과기부 사업 등 연도별, 사업별 자세한 사용내역을 밝히고 있는데 이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에 대일 청구권 자금을 얼마나 알뜰하게 유용하게 사용하려고 했는지 그러한 노력이 눈물겹다. 당시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외자를 도입하기 위하여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을 파견하는 등 외자확보를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던 때었고 이러한 8억불이라는 큰 자금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우리나라의 경제개발도 어려웠을 것이다.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박 정희는 미국을 방문하였으나 케네디 대통령은 혁명을 통해 집권한 군 출신의 대통령이라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절실했던 박대통령은 백 영훈 박사의 조언에 따라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을 파견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외자를 조달하였다. 1961년 12월에 체결된 한국과 독일 정부간 경제 및 기술 협력에 대한 의정서로 공공 및 상업차관 자금 1억 5천만 마르크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는 달러로 치면 3,700만 달러 정도로 본격적인 경제개발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었다.
이외에도 필자에게는 특별히 기억나는 한 가지 사건이 있다. 1981년 초 김재익 수석은 갑자기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 계획을 알리고 방미 경협 자료를 지급 청와대로 보내 달라고 경제기획원 경협총괄을 담당하던 필자에게 지시했다. 급거 만든 자료를 가지고 출발한 대표단은 귀국 후 대통령 특별지시로 (미국의 협조를 받아 두었으니) 일본으로부터 100억불 차관지원요청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1980년대는 세계적으로 초고금리(레이건 행정부 시절 폴 볼커의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추진) 시기였는데 일본 해외 협력기금(OECF)자금은 7년 거치 18년 상환으로 연리 1%로 거의 무상원조와 다름없는 자금이었다. 당시 6차 5개년 계획기간 중 일본 OECF자금은 연간 1억불 정도도입을 예상하였는데 100억불이라니? 우선 논리부터 만들어야 하니 우리나라는 당시 GDP의 6%를 국방비로 사용하는데 일본은 1%만 사용하고 있어 안보에 무임승차론을 내세우고 또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누적 대일 무역적자도 지원의 근거로 내세웠다. 당시 중장기 공공차관 도입 계획이 수년간의 사업을 다 합쳐도 20억불 정도였는데 갑자기 100억불을 만들려니 댐건설, 상수도, 도로건설, 교량건설, 하수처리시설 등 있는 사업 없는 사업 다 했지만 부족해 주택 건설사업을 대폭적으로 넣었더니 일본 측 대표단으로부터 일본의 주택사정을 아는 분이 한국이 주택산업을 이렇게 많이 하는 게 맞느냐는 핀잔도 받았다. (1980년대 초 만해도 일본 대신들이 25평형 주택에 사느니 하면서 일본의 주택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그 후 1986년 플라자협정이후 엔화가 두 배로 폭등하면서 일본은 거의 제로금리로 무제한 양적팽창을 함으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고 주택보급률도 130%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올라가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일본 차관은 40억불을 도입하여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많은 사업을 할 수가 있었다.
일본은 우리 경제개발 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낡은 방적기를 새것으로 교체해야 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투자명목으로 도입 시 관세, 법인세 등 세금을 감면받고 우리의 값싼 인력을 활용해 이익도 많이 남겼다. 그후 기술도입, 산업시설 건설 등에서도 일본의 역할은 컸다. 우리의 각종 법령 제도 등도 초기에는 일본을 많이 참조했다. 또한 해방 후 일본이 본국으로 철수할 때 미군정은 일본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한 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을 모두 귀속 재산으로 회수하고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 재산도 모두 귀속재산으로 회수하였는데 이는 남한에 23억 달러어치(북한에 29억 달러)로 당시 남한 경제 규모의 80%에 해당한다. 즉 다시 얘기하면 이조 500년의 유산과 순수 우리 국민이 이룬 경제는 귀속재산의 1/4 수준인 해방당시 5~6억불 수준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들이 나중에 두산그룹, 한화그룹, 해태제과, 동양시멘트, 삼호방적,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LG화학, 쌍용그룹, 동국제강, 동양방직, 동양제과, 한국전력 등 많은 우리기업들의 모태가 된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은 전혀 무시하고 그저 반일만 외치는 반지성적인 행태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논란을 빗고 있는 후쿠시마원전의 처리수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허용기준을 넘지 않도록 희석하고 IAEA가 검증한 처리수는 G7국가가 모두 안전함을 인정하고 있는데도 계속 문제시하고 이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한 중국의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어찌 과학적,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미 알려진 대로 중국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을 100기 이상 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는 51기가 가동 중인데 원전 운영에 필수적인 냉각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동부해안선을 따라 원전이 배치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중국 장쑤성의 텐완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2~3일 내에 편서풍에 따라 우리나라로 침투한다. 그보다 더 가까운 지역인 다렌 등에도 많은 원전이 있어 그 위험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원전 운영과 실수를 IAEA 등 국제사회에 알리지 않는 중국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우려는 매우 크다. 이미 홍콩의 유수 언론들은 중국의 원전들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도 있다. 반면 일본의 방류수는 IAEA 등 국제기구의 감시를 거쳐 안정성이 인정된 바도 있고 이 물이 방류가 되면 쿠로시오 해류를 거쳐 북태평양을 통해 우리나라에 도달하는데 4~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더 이상 이성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는 논쟁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백해무익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일인당 GDP가 구매력기준으로 2018년부터 일본을 앞서고 경상가격 기준으로도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또 내년 또는 내후년 정도에는 총수출액도 일본을 앞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소재, 원료, 기계공업 등 셀 수 없이 많은 부문에서 매우 강한 앞으로도 우리가 적극 협력해야 할 중요국가이다. 우리나라는 과거의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일본 미국과 함께 우리와 가치를 함께하는 태평양지역의 핵심 동맹으로 활기 찬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역사적 시기이다. (끝)
정재호 *前 인천대 석좌교수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 2023-05-26 | 조회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