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운동연합

 한 나라의 운명은 결국 그 사회적 선택이 누적된 결과다. 나라의 중요한 선택은 비범한 혜안과 냉정한 결단을 요구한다. 정확한 현실 진단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고 시대 흐름과 정세 전개를 꿰뚫어 보면 합당한 국가 미래 전략이 보인다. 그런데 이 안목을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안목을 가진 사람조차도 자신의 사적 이익과 배치되면 나라가 나아갈 길인데도 외면하고 반대하기 일쑤다. 발목 잡는 기득권을 가차 없이 잘라내는 비정한 추진력이 함께해야 옳은 전략도 빛을 발한다.    깊은 통찰력과 단호한 과단성은 통상적으로 범인의 것이 아니라 뛰어난 지도자의 덕목이다. 지도자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과거를 잘라내지 못하면 그 사회는 무자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피해가지 못한다. 그런데 개인이든 사회든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은 오직 결과만이 말해준다. 전략을 결정해야 할 단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 옳음을 증명할 길이 없다. 대중이 지도자를 존경할 때 사람들은 그의 경륜을 일단 믿고 따를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 정치의식이 계발되지 못한 시기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을 도입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GATT 체제의 흐름을 잘 탄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빈농 중심의 한국경제가 세계 굴지의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대국민 설득에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채 자신의 비전을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독재자라는 오명을 자초하였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선택의 옳았음이 성과로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달라지고 있지만 요즘까지도 부정적 정서 또한 만만치 않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언론의 자유다. 언론자유 없는 국민주권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는 양날의 칼이다. 민의 수렴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중구난방은 현인의 기막힌 탁견을 범인의 속된 소견 더미 속에 묻어버리기 십상이다. 구성원들의 사적 이해에 직결된 사회 선택은 가짜정보와 여론조작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이에 내둘리지 않는 사회라야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    대한민국은 출범 초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언론자유는 수시로 유린당하였고 민의의 현명한 수렴보다는 지도층의 권위가 사회적 선택을 주도하기 일쑤였다. 물론 성공적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진전은 언론자유를 크게 신장하였다. 수차례 선거에 의해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와 탄핵 파동, 그리고 선거 때 댓글 파동에서 본 바와 같이 가짜정보와 여론조작은 언론의 자유를 한껏 농단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을 비하하는 칭호가 유포되면서 언론자유는 이성적 선택을 위한 민의수렴보다는 한풀이 욕설 쪽으로 남용되는 중이다. 각하라던 호칭이 님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탈 권위는 매우 바람직하게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을 짐승에 빗대던 표현이 이제는 저주 수준에 이르면서 탈권위의 의미는 퇴색하고 거의 내전 급 분열과 대결을 조장할 정도로 위태위태하다. 기이한 적개심에 휘말려 이제는 서로를 원수로 보는 극단 세력들이 생겼고 70여 년의 분단 세월을 거치면서 불치의 고질병처럼 되어간다.    이 와중에서 지도자는 국민적 존경을 상실하고 파벌의 보스로 전락하였다. 이들은 반대파에게는 ‘노구리’고 ‘쥐박이’고 ‘닭x’일 뿐 인간도 아니었다.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가 사라지면서 여론을 건강하게 선도하는 기능도 함께 사라졌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자파의 이익에 부합하는 요설만을 지지하는 가짜와 조작이 지혜로운 탁견을 뒤덮어 쓸어가는 흙탕물로 변하였다.    일제와 6·25전쟁을 거친 뒤 크고 작은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를 아물기도 전에 다시 할퀴어 댔고, 파벌의 보스들은 상처 입은 민심을 달래고 치유하기는커녕 지지기반 확보를 위하여 오히려 더 아프게 하는 데 열을 올렸다. 급기야 지난 정부의 대통령은 탄핵으로 퇴출당하고 곧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새 정부가 들어섰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주류교체까지 선언하는 등 새 정부의 반대파 배제는 전 정부의 판박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검찰을 동원한 형사소추가 기본이고 검찰수사는 으레 구속으로 시작하여 별건 수사로 이어지는 점이 전과 다른 특징이다.    이 모든 사태의 배후는 성난 민심이다. 그동안 산업화를 이끈 보수 지도층은 성공적 경제개발의 후광 아래 기득권을 구축하고 누려왔다. 그런데 자기 근신 없는 ‘갑질’과 경제 권력 대물림의 노골화에 더하여 지난 총선에서 국가권력을 사유물로 여겼던 여권의 공천 파동은 국민적 공분을 사는 데 넘치고도 남았다. 지도층이 자정(自淨)을 잊을 때의 후폭풍인데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의 명분으로도 달랠 수 없는 수준이다.    보수 지도층이 그동안의 성과에 도취하여 자기 개혁을 외면한 데 따른 심각한 자업자득이다. 드디어 여야 원내대표가 모두 노동운동 지도부 출신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양대 참모가 한 명은 대통령, 다른 한 명은 보수 야당 대표다. 그의 비극적 타계는 불과 9년 전 일이다.    여권의 적폐청산과 주류교체 움직임이 개혁보다는 잿밥을 챙기는 징후가 도처에 나타나는데도 민심은 관망 중이다. 마땅히 버려야 할 구악을 버리지 않은 데 신물이 난 민심은 새 정부가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갈아엎고 있는 것을 불안해하면서도 일단 두고 볼 뿐이다. 이 와중에 대북관계, 소득주도성장, 고용정책, 에너지전환, 그리고 최저임금 등 대안으로 등장하는 정책들이 하나같이 어설프다. 틀림없이 조만간 그 폐해가 쓰나미 되어 덮쳐올 터인데 대중은 그때에도 분노할 것이다. 또 한바탕 소용돌이가 오고 또 다른 세력이 적폐청산을 내걸고 세몰이를 할 것이다.    지금 지리멸렬한 야권을 보면서 여권 우세가 당분간 요지부동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지난 총선 직전의 야권도 분열로 소생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전 정부의 오만과 실패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탓에 지리멸렬하던 야권이 별다른 자체 개혁 없이도 3년 만에 여당이 되고 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고공행진을 계속한다.    국민적 관심사였던 남북-미북 정상회담은 아직 지지부진하고 적폐청산-주류교체 이외에는 내놓을 구체적 실적이 아무것도 없다. 즉 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그 성과 평가가 아니라 전 정부에 대한 염증 표현일 뿐이다. 현 정부가 실적으로 실패하고 공분을 살 경우 꼭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아무 비전도 공로도 없이 전 정권의 실패에 편승하여 집권하는 고리는 이제 끊어버려야 한다.    세계사적 격동기에 성난 민심이 계속 나랏일을 몰아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지도층은 더 이상 분노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표를 얻으려 하면 안 된다. 현 정부는 모든 정책을 점검하여 실패할 요소를 늦기 전에 척결하라. 잿밥은 잊고 개혁에 열중하면서 근신 또 근신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국민대로 분노조절로 냉정을 찾아야 한다.     필자소개                 이승훈 교수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現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한창 위세를 떨치는 세도가집 딸 혼사가 있었다.   지난 주말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 호사스런 장소에 수백 명의 고관대작들이 모여들었다. 총리, 부총리는 물론 청와대 수석, 각부 장관, 국회의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눈도장 받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원래 높은 사람 집 문지방은 매끄러운 법이다. 장소가 외진 산길이라 수백 대의 차량이 몰려 주변 교통상황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흰 봉투를 손에 들고 혼주에게 인사하려고 늘어선 긴 행렬이 장관이었고, 접수원은 하객에게서 받은 축의금 봉투를 성급히 책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고 전한다.   보통의 혼사라면 이야기거리도 안되지만 權柄을 쥔 세도가라면 다르다. 그래서 호사가들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들이 낸 축의금은 개인돈이었을까, 세금으로 된 특별활동비나 판공비였을까? 그날 거둬들인 축의금이 얼마나 될까?   요즘도 지체 높은 집 혼사라면 집 한 채 값은 나온다고 한다. 이중에는 세금 안내는 뇌물이나 증여도 있다.   결혼식을 취재하던 한겨레기자 귓등을 때렸다는 옆 사람의 비양거림. ‘이게 권력이지’. 권력이란 말에 머리가 띵하다. 그래. 살아있는 권력인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권력은 쾌락 중에 제일가는 것이라고 했다.   권력의 맛이 짜릿한 것은 ‘갑’질하지 않아도 ‘을’들이 설레설레 ‘을’질을 해주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가만히 주머니에 넣고만 있어도 작동한다. 막강한 권력을 쥔 사람이 정중하게 인터넷에 청첩장을 띄웠고, 눈도장 찍을 기회를 찾고 있던 아랫것들(그래도 여전히 높은 분들)은 기회라고 여겼을테고, 봉투에 듬직한 수표를 넣을까 아니면 고지식하게 김영란법대로 할까 고민하다가, 권력이 부르는데 뭐 어때, 하며 나섰을 것이다. 거기서 ‘정치’가 이루어지고 푸근한 동지애도 확인하였을 것이다. 잘하면 눈빛으로 다음 자리 예약도 주고받았을지 모르고.   끼리끼리 정치판이니 야당인사는 초청할 이유는 없다. 백로모임에 까마귀를 왜 부르나. 無垢한 동지끼리다. ‘보스’도 JP 가는 길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다만 규모가 살짝 크고 호화스럽고 음식서비스가 우아했을 뿐.   그 날만은 천하를 호령하던 여장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로 보였다고 기자는 전한다. 누가 그 엄마의 작은 호사에 돌을 던지랴. 김영란법이 좀 우스워졌지만 그게 대수인가? 까짓 거, 눈 질끈 감고 모른 척 하면 되지.   이렇게 쓰이는 게 ‘권력’과 특권‘의 용도라면 이걸 갑질이라고 봐야 하나, 직권남용으로 봐야 하나? 선거때마다 국회의원, 지방단체장 심지어 대통령까지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공약이 쏟아졌지만 선거 끝나고 나면 특권은 더욱더욱 높아지고 쌓여갔다. 하물며 ’큰 정부‘를 내세운 지금 정부에서 고관들의 圓光이 어떻겠는가?   김영란법상 축의금 한도는 5만원이다. 그날 식사비는 삼청각의 기본메뉴를 참고하면 10만원 가까이 아닐까? 김영란법은 식사비를 3만원으로 제한하지만 결혼식장에서는 그 이상도 허용한다. 그러나 일반상규와 비교해 현저히 비쌀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YS 대통령시절 ‘작은 결혼식’을 장려하고 공직자의 축의금수수를 제한한 적이 있다. 당시 대부분의 고위공직자는 청첩장을 돌리지 못했고 축의금을 받지도 못했다. 상가집에선 고위공직자인 큰 아들 손님에게서는 조위금을 받지 못하고, 일반회사원인 작은 아들 문상객에게서만 받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 어느 딸바보 공공기관장은 호텔에서 호사를 부리고 축의금을 받았다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뭐 사사로운 개인사를 가지고 그러나 할지 모르나, 오래 전부터 경조사의 부조문제는 가정의례준칙으로 규제한 걸 보면 대표적인 적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양식있는 정치인들은 솔범수범하기도 했다.   가족처럼 가까웠던 P장관이 작은 교회에서 친지들만 모아놓고 아들녀석 혼사를 치뤘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 얼마나 섭섭했던지. 그리고 몇 달 전 L의원은 축의금 봉투를 뒤져 5만원 넘는 돈은 전부 돌려보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시도 때도 없이 촛불의 혼령이 적폐청산의 나팔을 불어댄다. 前 정권에서 떵떵거리던 세도가들은 거의 쇠고랑을 찼고, 재벌집 2세, 3세들은 부하직원에 욕질만 해도 사회에서 매장되고, 사기업회장이 자기 딸 인사에 훈수 두었다고 영장이 청구되는 세상이다. 아, 그래서 이제 세상에 갑질 없어지고 고관대작들도 특권을 슬슬 내려놓고 금수저, 흙수저도 모두 똑같아지는 세상이 오려나 했다.   혼사를 치르고 얼굴이 환해진 혼주가 다음날 간부회의에서 한 말은 더 기가 막힌다. “행여 우리 안에 안일한 것은 없었는지 고삐를 바짝 죄며 적폐청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熏灼 코스프레인가? 金貫子 서슬에 큰 기침하는 모양새다.   적폐란 敵에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상대보다 자신에게 우선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앞으로 적폐청산을 한다지만 뒤로 쌓이는 적폐가 보이지 않은가? 감히 누가 나한테 뭐랄까, 이런다면 이건 오만이다. 이제 집권 1년이 지났다. 이번 혼사가 서민들 눈치 안보고 특권층이 갖은 호사를 부려도 된다는 신호탄의 의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너무 편협한가? 남의 집 경사의 작은 일탈을 이처럼 까칠하게 보다니.   아무래도 秋한 모습이었다.       필자소개                 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건설부차관국토연구원장교통연구원장중부대 총장단국대 교수

돌이켜보면 1950 년대 중후반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는 참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크게 어수선하였습니다. 남북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두발(頭髮)을 ‘까까머리’로 삭발해야 했고, 교복 상의 주머니 위쪽에는 예외 없이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영화관에는 대개 ‘학생출입불가’ 푯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필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두발을 비롯해 이름표 달기, 극장 출입 등을 비교적 학생 자율에 맡겼습니다. 머리는 너무 길지 않은 선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관리하도록 했으며 학생지도의 편의라는 미명하에 달아야 했던 이름표는 학생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라며 달지 말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문화예술의 한 장르라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며 자유롭게 영화예술을 즐기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모든 자유가 교장선생님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의 국내 사회상에 비추어볼 때 교장선생님의 방침이 참으로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음을 인지하면서 훗날, 우리는 ‘진보교육’을 몸으로 터득한 것임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진보교육의 표상이었던 교장선생님의 존함, 서원출(徐元出, 1900~1966)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의 그늘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진보사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사회에 ‘보수사상’만이 득세하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필자는 유럽, 특히 분단된 나라 서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공산주의를 비롯해 다양한 사상을 자유롭게 논의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낯설어 초창기에는 많이 불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무렵 서독의 이웃 나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특정 이슈에 대해 아주 다른 정책적 의견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이따금 그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작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고 서로 견제함으로써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필자의 뇌리에는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은 외롭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부류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타협정신이 부족한 단점이 있으나 용기 있고 상대적으로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국내 진보세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해왔습니다. 가령 대학생 신분으로 산업 현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연민’을 느끼곤 했습니다.   아울러 이처럼 진보사상을 주창하는 그룹이 건재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증거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몇 번인가 ‘부적합한 인물이다’라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의당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영락없이 후보자가 낙방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진보세력의 존재감과 저력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좌파 ‘감시자’의 긍정적 역할을 보았던 것입니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마도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에 지명된 김상곤 후보였을 것입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후보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剽竊)했다는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표절(Plagiat)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재산(Geistiges Eigentum)을 도적(盜賊)질하는 것이라 중하게 여기며, ‘남의 것을 포악스럽게 빼앗은 행위’를 뜻합니다. “표절의 표(剽)는 훔치는 표 자이고, 표절의 절(竊)은 도적질하다의 절 자이다. ...곧 훔치고 도적질하는 일이다.”(송복, 2018.1.25.)라는 지적은 무척이나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한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닌 교육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의 수장이 된다는 사실이 필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정권 차원에서 임명 절차를 강행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헝가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2012년 슈미트(Pal Schmitt) 헝가리 대통령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건이 불거지자 즉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헝가리의 도덕적 잣대와 우리의 기준이 이처럼 다른 현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필자를 한없는 실망의 늪으로 몰아붙인 것은 진보세력의 무거운 침묵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정부의 임명 절차를 정당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 역시 ‘내 편, 네 편’ 하며 ‘편 가르기’라는 모순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진보는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는 사회 정의를 우선시하기에 그만큼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니 “학생은 자기 몸가짐을 책임져야 하며, 문화예술을 소화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며 제자들에게 올곧은 진보정신을 깨우치던 큰어른이 더욱더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 2018.7.3.]         필자소개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성악설(性惡說)과 성선설(性善說)를 두고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필자입니다만,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래도 사회규범(規範)은 엄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솜방망이 규범’은 오히려 폐해를 키운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필자가 의과대학 학생 신분으로 맨 처음 숙지해야할 독일 대학의 학칙 중 하나가 ‘재재(再再)시험’이라는 제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기 중 시험이든, 학년 말 시험이든 일단 시험을 보고 불합격하면 단 한 번만 재시험을 볼 기회가 있을 뿐, 그 이상의 기회는 결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 학기를 ‘망치는 결과’입니다.     게다가 무서울 만큼 가혹한 것은 공식 중간평가시험(예과 졸업시험)이나 졸업시험에 해당하는 국가자격고사의 첫 번째 시험에서 낙방하고 재시험에서 또 실패할 경우 동일 학과를 독일 내 어떤 대학교에서도 이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제도는 범국가적 차원의 규정입니다.    국내에서 대학 입학시험이나 고등고시를 삼수(三受), 사수(四受)하며 관문을 통과하는 일을 흔히 보아온 필자에게는 아주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서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이 영웅담처럼 떠올리던 우리네 정서와는 많이 달라서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네 ‘미담’에 숨겨진 국가차원의 사회적 낭비와 너그러운 정서의 다른 측면에 대하여 생각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만큼 서구에서 사회질서의 근간인 규범은 조용하면서도 예외 없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통법규를 어길 경우 부과되는 벌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음주 운전은 그 강도가 더욱 높을 뿐 아니라 몇 년간의 시공간이 달라졌다고, 사면을 통한 운전면허의 재발급은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솜방망이 처벌’, ‘솜방망이 규제’라는 말이 실감 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좀 더 드라마틱한 실례가 있습니다. 필자가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하려고 대학 담당관을 찾아가 응시자가 준비해야 할 몇 가지 서류를 점검하는 중 일상생활에서 들어보지 못한 ‘Fuehrungszeugnis’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학생 신분으로 여러 해를 살았지만 처음 듣는 낯선 단어이기에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필자가 지난 7여 년간 독일에 살면서 형사법에 저촉된 기록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품행증명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서류는 어디에서 발부받아야 하냐고 묻자, 지방법원에 가서 받아 오라는 것입니다. 하마터면 의사국가고시도 못 볼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아직도 이런 제도가 존속하는지 독일동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전히 존속하며, 더욱 강화되어 의원(醫院)을 이전했는데, 다시 같은 절차를 밟았다고 합니다. 그동안에 음주 운전이나 마약 사건에 연류 되었는지도 확인하더랍니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결박’은 범법자(犯法者)에게 가혹하리만큼 엄합니다. 범법 경력자는 투표권과 은행 신용 거래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지장을 받지 않는 정도만 허락합니다. 즉, 국가공무원이 된다든가, 각종 선거에서 피(被)선거권은 박탈당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네 현실 상황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구치소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공중파 방송에서 자랑하는 정치인이나, 윤리적 문제로 대법원 판결에 유죄 선고를 받은 인사가 공중파에서 시사 해설가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역설적이라고 할까, 우리는 참으로 ‘너그러운’사회에서 사는가싶습니다. 우리 의식에 깊이 자리한 ‘솜방망이 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가 싶어 우려됩니다.    우리 사회의 미덕인 ‘너그러운 정(情)’을 악용하는 악폐(惡弊)의 하나인 ‘솜방망이 처벌’을 경계하며 오늘의 부끄러운 적폐에서 하루 빨리 자유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매우 아름다운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보수정권 기간 중에 빈부격차는 켜졌으며 가계와 기업의 소득격차는 심해지고 재정은 소득 재분배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은 2000년도의 69%에서 2012년 62%로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은 기간 중 17%에서 23%로 증가하였다. 특히 100대 기업은 고용의 4%에 불과한데 이익은 전체의 60%나 가져가고 나머지 기업은 고용의 96%를 담당하지만 이익을 가져가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서 허덕인다. (장하성 ... 분노하라 ) 그래서 구상한 정책이 777플랜이다. 국민소득 대비 가계소득을 70%로, 노동소득분배율을 70%대로, 중산층비중을 70%로 UP시킨다는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많이 쥐어주는 정책,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수단을 채택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그 결과 투자도 늘어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소위 소득 주도 성장을 전략으로 택하고 그 구체적 수단으로 (1) 최저임금의 대폭인상, (2)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 (3) 근로시간 축소로 일자리 나누기, (4) 이에 필요한 재원은 법인세 소득세의 핀세트 증세를 추진한다. 한마디로 노동자중심의 정책이고 그에 필요한 돈은 대기업과 고소득자로부터 거두겠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자 혁신주도 성장도 동시에 추진함으로 두 바퀴로 경제를 운용하겠다고 하였으나 혁신성장은 기업 활동 지원, 노동시장의 유연화,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하는 데 기업 활동 제약, 노동시장 등 각종규제를 강화하면서 혁신성장을 하라는 것은 각종 브레이크를 잔뜩 밟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1년간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는 참담했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했으나 추진한 정책은 모두 고용에 해가 되는 정책만 추진함으로써 실업자가 126만 5천명을 넘어서는 사상최고의 실업사태를 보여주었다. 3월 실업률은 4.5%로 3월 기준 17년 만에 가장 높았으며 실제 실업률로 볼 수 있는 확장실업률(실업률이 조사 대상기간 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으로 간주하는 모순을 보완하기 위하여 통계청이 고용보조지표로 개발)은 11.8%로 통계청이 2015년 1월 통계를 발표한 이래 가장 높았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11.6%이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25%이다. 과거에는 전년 동월 대비 신규고용이 매달 30~40만 명씩 늘어나던 것이 금년 2월 이후는 매달 10만 명 수준에 그쳐 매년 신규 대졸자가 50만 명 가까이 배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재앙수준이다.   세계경제는 바야흐로 경제호황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이루는 이른바 골디락스 상황이다. 미국은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으로 4월 실업률이 3.9%로 기업들은 사람구하기가 어려워 재소자까지 일자리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실업률이 4%이하로 떨어진 것은 한국동란, 월남전, 그리고 2000년대 닷컴버블 시기 이후 처음이다. 일본도 규제완화 재정긴축 통화완화의 세 가지 화살로 작년 실업률이 2.7%로 사람구하기가 어려워 우리나라 청년들의 일본취업이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며 유로 존도 4월 실업률이 8.5%로 2008년 12월 이래 가장 낮은 것과 비교하면 정책 실패는 매우 두드러진다.   서민을 위한 대통령을 표방하였으나 1/4분기 가계소득 조사결과 하위 20%의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00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큰 폭인 8%넘게 급락함으로써 하루 먹고 살아야하는 자영업자나, 임시직, 일용직들의 실업은 저소득층의 생계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이들의 분석은 매우 오류가 많다. 기업소득이 늘어나고 특히 대기업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의 소득을, 중소기업이 차지해야할 소득을 대기업이 가져가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삼성, 현대차, LG 등 우리의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고 있다는 세계경제사적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매출액의 90% 이상, 이익의 97%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3.1%중 삼성전자가 0.9%를 담당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화시대에서는 초일류기업들만 이익을 내는 경제라는 것을 이해하여야한다. 반도체의 이익률은 매출액 대비 50%가 넘으며 애플과 삼성전자는 스마트 폰 시장의 전체 이익 중 105%를 가져간다. 나머지 모토롤라, 에릭슨, 노키아 등은 –5%의 이익이다.   이들은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OECD국가 중 하위라고 주장하며 소득재분배를 더 늘리라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의 지니계수는 시장소득 기준으로 OECD국가들 보다 양호하나 재정의 지니계수 개선효과를 감안한 사후소득 기준으로는 현저히 떨어짐으로 세금과 연금, 복지확대 등을 통하여 소득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노인인구의 지니 계수가 한국은 0.509로 OECD (37개국 중 통계를 제출하는 26개국) 평균 0.735보다 매우 양호하나 (연금 등을 포함한), 사후소득기준으로는 우리가 0.411인데 OECD는 0.275로 크게 개선됨으로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엄청난 오류가 있다. 흔히 OECD평균을 말하는 데 여기는 소국인 룩셈부르크,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큰 나라와 같이 한나라로 보고 있다. 또 이들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국민연금이나 기업연금제도가 성숙되어 있지 않아 이들 연금이 성숙되는 시기는 우리도 그들 나라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고령화가 선진국만큼 진행되지 않았으나 급속한 고령화추세에 있다. 이미 2012년도에 조세연구원에서는 현행 복지제도 만으로도 2050 년경에 OECD수준을 넘는 복지비 지출을 경고하였는데 그 이후 노인기초연금 도입 등 박근혜정부의 복지확대 정책과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훨씬 그 이전에 심각한 재정위기가 올 것이 예견된다.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문제도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2016년도의 근로소득세는 47%가 한 푼도 내지 않고 상위 19%가 전체의 90%를 낸다. 종합소득세의 경우 상위 8.6%가 전체의 87%를 낸다. 시장소득 10분위 배율은 우리가 16.6배 영국은 36.1배, 소득세 10분위 배율은 우리는 749.5배 영국은 44.3배이다. 이와 같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에 대한 인식부터 오류가 많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경제의 세계화로 세계는 소득구조의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이에 대해 ILO, UNCTAD를 중심으로 임금주도 성장론이 대두되었다. 이는 비주류 경제이론의 하나로 후기케인지안 내지 후기칼레키안 모형으로 일컬어지는 신좌파 경제이론이다. 이 이론은 내수시장이 큰 국가에는 유리하지만 대외부문이 상대적으로 큰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는 임금상승이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오히려 불리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들도 주장하고 있다. 또 소득성장론은 공황 등 경제위기가 있을 때 한시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긴급처방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이론이 본격적으로 채택된 국가는 없으며 그와 유사한 정책으로 일반국민들에게 소득정책을 편 나라들이 있지만 성공한 사례는 없다. 1990년대부터 사회민주당 세력이 집권하였던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각국의 제3의 길과 같은 실험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이로 인한 금융위기로 연결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좌파 정부국가들도 실패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원래 충격을 주지 않고 조심해서 다루어야하는 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에 충격을 주어 경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제를 만들겠다는 무모함이 깔려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멘큐의 경제학 원리 교과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 도입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최저임금을 시행하면 비숙련 근로자들의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데에 미국 경제학자의 83%, 한국 경제학자의 86%가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시행은 여러 가지 요인을 감안하여 신중히 해야 한다.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지난 2009년 부시대통령 시기에 시간당 7.25달러를 정한 이후 올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193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12번에 걸쳐 인상했으며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이다. 미국은 각 도시별로 시의회가 결정하는 데 연방정부보다 높은 최저임금 주는 23개( 최고는 시애틀, 뉴욕 15불, 미국 일인당 GDP는 우리의 두 배)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주가 6개, 연방정부보다 낮은 최저임금 주는 5개 주가 있다. 아울러 미국은 기업규모별로 적용 시기를 수년씩 차이를 두기도 한다. 일본도 각 도시 별로 정하고 있는 데 2017년 10월 이후 적용 기준으로 전국 평균 848엔이면 일본 일인당 GDP가 우리보다 약 35%가 높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너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유럽은 연령별 학력별 경력별 최저임금에 차이를 두고 있으며 독일은 장기 실업 후 구직한 근로자에 대해 최초 6개월간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시급 만원수준은 우리보다 소득이 50% 이상 높은 (영국, 독일 등) 나라에서 적용하고 있으며 독일은 최저 임금제도를 2015년에 처음 도입했으며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근로자는 전체의 20%정도이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도 마찬가지 이다. 최근의 고용동향을 보면 거의 모든 부분이 감소한 반면 정부주도로 공공행정, 보건복지 등만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OECD국가들의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일자리가 전체고용 중 21.7%이나 우리는 8.9% 밖에 되지 않음으로 OECD에 비해 현저히 적은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는 기준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로서 OECD는 재정을 지원하는 모든 부문을 공공부문 종사자로 포함하나 우리나라는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만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OECD에서는 한국정부의 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체 통계에서 제외하고 있는 상황이다. OECD 통계에서는 공공부문 종사자이나 우리통계에서 제외되는 부분은 사립학교 교직원, 어린이집, 유치원, 의료기관 종사자, 약 60만 명의 군인과 10여만의 군 대체 복무자등이 있으며 이를 포함하면 우리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공무원 연금이 고갈되어 일반재정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공공기관도 공기업 부채도 500조가 넘어 부채비율이 160%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 현 35만 명 수준의 공공부문 종사자에 64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늘린다는 것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하겠다.   근로시간 단축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OECD국가 중 근로시간이 긴 이유는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데 이들은 매우 장시간 근무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시간제 근로 등 근로형태의 유연성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다. 우리나라의 시간제 고용율은 13% 수준인데 선진국은 대체로 20% 수준이며 네덜란드는 37%, 스위스, 영국, 독일 등은 대체로 22%~26%이다.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 내지 공장의 해외이전으로 고용에 해가 된다. OECD는 1994,1998, 2000년 등 세 차례 실증분석보고서를 내었는데 분석결과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에 악영향을 주고 특히 낮은 임금의 중소기업에게는 기업 생존 능력에 타격을 준다. 하지말자는 게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임금도 성과급체제로 바꾸고 근무시간 중 일의 집중도도 높이는 등 개선해 나갈 점은 개선도 해 나가자는 것이다.   증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소득세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고 법인세는 전 세계가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규제를 완화하며 기업을 유치하려는 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는 법인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다. 기본적으로 세율이 높다고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법인세를 인하해 그 재원으로 배당을 하면 개인의 소득이 올라가고 소득세도 더 걷게 된다. 법인이 투자를 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다시 발생한다. 또 부채상환을 하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건전해지고 기업이 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법인세 인상의 효과는 반대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법인세의 기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소득주도 성장은 더 이상 추구해서는 안 되는 정책이다. 과거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의 역사적 경험은 경제가 어려울 때 모두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복지제도를 손질했으며 세금을 인하하고 재정을 건실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의 개혁, 일본의 아베노믹스, 트럼프의 정책, 프랑스 마크롱의 정책도 마찬가지이고 이들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노동시장 개혁, 규제개혁, 친 기업 정책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정책이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의 활력과 이를 통해 고용의 증대를 가져온다. 고용이 증대되면 소득이 증대되고 세수가 증대되고, 복지수요가 감소하고 재정이 건전해진다. 고용은 기업이 주가 되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고용을 1인 증대시키면 민간 부문의 고용이 1.5명 감소한다는 실증적 논문은 수도 없이 많다. 이제 무리한 정책실험은 그만두고 진정으로 나라경제를 생각해 민간부문 경제 활성화, 고용 증대, 창조경제가 꽃피는 경제를 만들 것을 기대한다. (끝)       필자소개                       정재호 (인천대학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법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경제학박사두산 엔진 사외이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외이사대한민국의 대콩고민주공화국 국가경제개발자문사업단장 S&R 경제경영연구원 대표이사 회장LG그룹고문, LG 그룹회장실 부사장,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경쟁국장,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국장한국국제협력단 초대이사

  누가 정치에 혐오를 느낀다고 했는가?   점점 뜨거워지는 선거판을 조금 삐딱한 눈으로 지켜보면, 나름 묘미를 느낄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도둑처럼 정권을 잡은 집권당,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다가 몰락해 버린 야당, ‘그 밥에 그 나물’이지만 신장개업한 당들이 얽혀서 초반의 열기를 달구고 있다.   전초전의 서막은 때맞춰 터뜨린 안희정 지사의 염사(艶事), 절묘한 타이밍의 남북정상회담 폭죽소리 아닐까? 평양냉면과 노벨상 예약이 몰표를 끌어오다가, 드루킹이란 복병을 만났다.   선거전에 나선 후보자들의 이런 저런 무용담(노통과 함께 찍은 사진 따위), 듣기는 마냥 짭쌀달콤한 공약 나부랭이, 그들이 흘리는 소문과 가십, 상대편의 속 뒤집어 놓는 독설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이제 좀 있으면 시민단체들이 심판자인 양 등장하면서 더욱 복마전이 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개헌안을 내놓았다. 남북연방제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따랐지만, 개헌안은 날아갔다. 보통 선진국의 진보는 ‘중앙집권적 큰 정부’를 지향하는데, 우리나라 진보는 ‘큰 정부와 힘센 지방정부’를 지향한다. 중앙권력의 나눔에는 냉랭하면서 지방분권은 강조하니 약간 헷갈린다. 집권당이 지방정치를 강조하니 점점 정치의 지방화가 진행되고 지방 구석구석으로 갈등의 정치바람이 스며든다.   이참에 무식한 소리를 좀 하자. 지방선거조직을 광역과 기초로 나누는 것은 행정낭비가 아닐까? 세종시와 제주도는 일원화되었다. 우리가 늘 모델로 삼는 도쿄도 구(區)조직은 형식적이다. 교육 자치는 지방자치의 진수라며 광역마다 교육감을 뽑는다. 교육도 정치지만, 정치가 아니라며 정당추천을 배제하는데 눈 가리고 아옹이다. 이렇게 초등, 중등교육이 전교조의 먹이가 되었다. 대학교육 만은 살아남아서 아직 평준화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이번 선거에서 4천명 가량의 선량을 뽑는다. 예비경선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3만~4만명의 후보가 나설 것이다. 이들이 공적 사적으로 뿌리는 선거비용이 어림잡아 20조~30조는 될 것이다. ‘높은 자리’ 욕심에 모두들 나섰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의원인지 한의원인지, 시의원이 도대체 뭐하는 자리인지, 아니면 시장? 또는 교감을 뽑는 것인지 교육감을 뽑자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아무리 장님투표라지만 수십 명의 후보자명단이 적힌 투표지에 붓도장을 꾹 눌러주려면 감이라도 잡혀야 하지 않는가.   곳곳에 현수막이 나타나고 플래카드가 흔들리고 걸개사진이 걸리지만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어떻게 아는가. 옆집 주인도 모르고 가끔 부부싸움하는 고함소리나 들으며 지내는데, 선거철에 불쑥 나타난 정치얼짱들의 사진만 보고 누굴 고르라는 말인가?     미국이 남북전쟁을 끝내고 나서 치른 선거는 난장판이었다. 전쟁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부 백인들은 선거를 보이콧하였다. 흑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어 투표권을 얻었지만 대다수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 이때 북부의 건달들이 남부로 내려와 흑인들에게 북부에서 온 구세주처럼 행세하며 표를 모아 정치인이 되려고 나섰다. 상원의원까지 지낸 조지 스펜서는 목화밀수로 돈을 번 이런 류의 떠돌이정치인이었다. 이들을 카펫배거(carpetbagger)라고 한다. 이른바 뜨내기정치인들이다.   해롤드 로빈스의 소설에 ‘카펫배거들’이 있다.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소설인데, 제목의 뜻은 ‘돈 좀 있는 정치꾼 건달’이라고 할까? 이들 카펫배거들은 거꾸로 공화당 백인들을 스칼라와그(건달)라고 몰아붙여 지역적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낙선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의 선거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언론을 장악한 점령군진영은 문전성시다. 정치풍향이 바뀐 것이다. 정치판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던 사람들, 대선에서 한 가락하고 공직배분에서 물먹은 사람들이 친노니 친문이니 또는 골수DJ니 하며 나서고 있다. 연고도 없으면서 주민등록 잠깐 옮겨 놓고는 지역일꾼을 자처하기도 한다. 이들은 맛집에서 윤이상문어와 ‘처음처럼’ 소주, DJ민어(DJ 고향에서 잡았다는)를 찾는다. 냉면도 평양에서 제면기를 들고 와 사리를 빚은 것과 여의도 ‘낡은 것’들은 맛이 다르다고, 내편 네편을 확실하게 가른다.   작년의 대선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든 보수진영은 초토화하여, 경상도지역까지 진보의 깃발이 휘날릴 태세다. 그나마 나선 후보들 인기는 조폭같은 대표의 헛발질 탓에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하다.   이런 모양새가 한국판 카펫배거들의 면면이다. 물론 그들 중에 진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분위기가 익어가면서 나타나는 후보자들의 감춰진 신상은 실망스럽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사람, 사기전과를 가진 사람, 위장전입과 논문표절 등등. 최근 청와대출신 구청후보는 여비서 폭행범으로 밀려났고, 다른 청와대비서관출신 시장후보는 조폭의 지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적어도 선출직 정치인이 되려면 평균보다는 월등 높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대통령은 평균정도면 된다고 하지만). 왜 이들에게 4년마다 한번씩 세금을 쏟아부어 멍석을 깔아주는가.     내가 외국생활 중 본 미국이나 영국선거는 조용한 선거였다. 플래카드도 없고 벽보도 없고 동네마다 벌어지는 유세도 없다. 호화롭고 요란한 팸플릿도 구경하지 못하였다. 선거비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정당홍보자료를 서점에서 유료판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카펫배거들이 판치는 우리나라 선거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소모전이다. 혈연, 지연, 학연을 표로 묶고, 등산모임, 티 파티, 상갓집 돌기는 기본이고 핑크빛 헛소문내기, 봉투돌렸다 되돌려치기 등 마타도어작전도 기발하다. 선거전략에 관한 한 우리는 일등 선진국이다.   선거 때마다 너무 많은 사회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선거자체가 소모전이다. 소모적인 비용, 소모적인 논쟁, 소모적인 아귀다툼, 소모적인 폭로, 소모적인 공약 등으로 얼룩이 진다.     그렇다면, AI(인공지능)에게 물어보자. 지방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냐고.   단언하건데 AI는 이런 현답을 내놓을 것이다. 기초단체와 교육감 선거를 없애고 공영선거비용을 대폭 삭감하라고. 이걸로도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하면, ‘선거를 아예 없애고 내(AI)가 선거를 대신 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상원의원 존 매케인의 말처럼 ‘정치는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좋은 세상이 갈가리 찢긴다’.       필자소개                 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건설부차관국토연구원장교통연구원장중부대 총장단국대 교수

오래전 이화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故 김옥길(金玉吉) 여사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필자가 “안사람이 이대 출신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총장님은 “아, 그래” 하며 반말로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셨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깍듯이’ 경어를 쓰시던 분이 말입니다. 처음에는 좀 당혹스러웠는데 지금까지도 따듯한 기억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반말에는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언어로서 반말이 갖는 폐해(弊害)가 지금 이 사회를 무척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치고 있습니다.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각종 형태의 ‘못된’ 현상에 대해 마음 아픈 것은 그 중심에 폭넓게 고착화된 ‘언어의 갑질 정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주민인 여성이 ‘갑’으로서 얼마나 무섭게 폭언을 퍼부었으면 ‘을’인 경비원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아붙였겠습니까. 언어적 폭거가 물리적 폭행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근래 언론에 크게 부각된 국내 대기업 임원의 민망한 ‘갑질’의 본질은 업무상 엄격한 지시가 아니라, 거기에 차용된 언어의 질에 있습니다.   경어와 고성이 만나면, 강한 메시지가 됩니다. 하지만 반말에 고성이 얽히면, 곧 폭언이 됩니다. 다시 말해 사적이 아닌 공무 석상에서, 특히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반말로 고성을 지르면 ‘갑질 폭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갑질 정서’가 팽배해 있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의사당에서의 삿대질과 막말 실태, 검·경찰에서의 반말 폭언 실태, 법정에서의 막말 실태 등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이는 ‘사회의 거울’에 비친 민망한 우리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녕 해결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 고착된 갑질 정서가 유럽 사회에서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유럽에서도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존경어로 대화하다가 반말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성(姓)을 떼고 이름만 부르곤 합니다. 이는 우리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말은 존경어보다 훨씬 부드럽고 정이 있습니다. 이를 프랑스에서는 ‘Tutoyer’, 독일에서는 ‘Duze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꾸짖을 일이 있거나 마음이 상하면 반말을 하다가도 갑작스레 ‘Monsieur’, 또는 ‘Herr’가 나옵니다. 그러면 긴장해야 합니다. 그들은 경어로 언어의 격을 높이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경어는 열띤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여기서 사회 교육의 가능성을 봅니다.   그 한 가지 예가 군(軍)의 언어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에는 아시겠지만 영어와 달리 경어와 반말이 상존합니다. ‘당신’에 해당하는 프랑스어와 독일어에는 ‘Vous’와 ‘Sie’가 있으며 ‘너’는 ‘Tous’와 ‘Du’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반말 자체가 두 나라 군대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장성급 고위 장교라도 병사에게 절대로 반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동향인 또는 동창생끼리 만났는데 한 사람은 장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병이라면 서로 반말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제3자가 끼면 반드시 서로에게 존대어를 써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가차 없이 군사 재판에 넘겨진다고 합니다.   이는 변화하는 시대정신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즉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몰아닥친 인권 지향의 시대를 감지한 국가가 능동적으로 군 개혁에 나섰고, 그 일환으로 ‘언어 순화’ 정책을 펼친 결과입니다.   그런 상태로 독일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독일군이 군사 작전의 명령어가 위압적이 아니어서, 다시 말해 반말이 아니어서 패전했다는 주장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반말 아닌 존경어로도 명령 체계를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개인은 물론 크고 작은 공동체 단위에서 품위와 품격에 대한 높은 잣대를 진지한 자세로 가다듬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언어의 ‘폭력’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 군대의 병영 문화에서 ‘반말’이 사라지면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기성 장교들은 경어로 명령 체계가 서겠냐며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생한 ‘병영 사고’는 군대 내에 팽배한 반말, 폭언 정서와 큰 연관이 있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 국군의 병영 생활에서 경어에 익숙해진, 즉 반말을 하지 않는 젊은 병사들이 제대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면, 훨씬 품위 있고 품격 있는 공동체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면 점차 말(言)의 ‘갑질 정서’가 사라지고, 따듯한 마음이 오가는 사회가 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막강 국군이 갖는 선도적 사회 순화 기능에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비현실적인가요?       필자소개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영향이 벌써 가시화되는가? 금년 3월의 실업률은 4.5%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았고 청년실업률도 11.6%로 두 자리 수를 기록하였다. 출범 직후부터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고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나타난 지표 역주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확신을 가지고 추진한 정책이라,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불신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하면서도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려하던 상황이 우려한 그대로, 그것도 생각보다 일찍 전개되는 모양새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의 기조는 간단하다. 당장 소비에 급급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정책적으로 높여주면 저축으로 퇴장되지 않고 모두 구매력 증가로 나타나므로 총수요증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렇게 증대된 총수요는 기업의 생산을 늘리고 나아가서 민간부문의 투자를 유발하여 경제성장 효과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는 정책의 기본수단은 최저 임금을 비롯한 낮은 임금을 올려주는 것이다. 이 임금인상으로 기업이 입는 손실은 한시적 공공지출로 보전해 준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이렇게 일단 늘려 놓으면 이에 따라서 증가한 수요가 궁극적으로 민간투자를 유발하여 총공급 능력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보기에 이 주장의 맹점은 두 가지다. 소비만 총수요증가에 기여하고 저축으로 빠지는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그 하나다. 아마 민간투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 상황이라면 타당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투자애로를 타개하면 투자 확대를 통한 총수요 증가도 충분히 가능한데 이 주장은 소비수요 확대만으로 총수요증가를 도모하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공공지출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확대해 놓으면 그 결과 발생하는 총수요 증가가 항구적일 것으로 기대한다는 점이다. 총수요 증가가 한시적이라면 본격적 민간투자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정규직화한 인력은 해고할 수 없고 한 번 올린 임금은 내릴 수 없으므로 기업은 공공지출 보조가 종료되더라도 그 인력을 떠안고 인상된 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보는 것 같다. 소득증가가 항구적이 되고 따라서 총수요 증가도 항구적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 환경에서는 신규 창업은 물론 없을 것이고 있던 기업들도 줄이어 파산하고 말 것이다. 민간투자는 오히려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 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그리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모두 생산비용을 큰 폭으로 상승시킨다. 한시적으로 고용 확대에 재정지원을 제공한들 한번 고용하면 그 인력을 해고할 수 없는 여건에서 과연 고용을 확대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결국 소득주도성장정책은 기취업자들의 소득은 즉각적으로 높이겠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일용직 고용을 줄이고 일반직의 신규채용도 위축시킬 뿐이다.  투자는 어떨까? 인건비가 크게 올라 고용전망이 매우 불리한 판에 국내에 투자할 기업은 드물다. 고용과 투자가 위축되면 당연히 국내 생산도 위축된다. 그런데 취업 중인 임금소득자의 소득은 인위적 임금 상승으로 이미 높아졌기 때문에 구매 수요는 늘어난다. 결국 초과수요가 불가피한데 여기에 비용 상승의 효과까지 더하면 그 다음 단계는 누가 보더라도 인플레이션이다. 또 국내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진 외제품의 수입을 유발하므로 경상수지도 적자로 내몰린다. 지금까지 시행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 실패에 그치지 않고 국가경제를 인플레이션, 기업 경쟁기반 잠식,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로 몰아갈 것이다. 3월 실업률 등 고용 지표 악화가 바로 그 선행지수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지금 한미 FTA 개정과 미중간 통상 마찰이라고 하는 격랑을 헤쳐가야 한다. 북핵이라고 하는 큰 파고도 발등의 불이다. 한국경제가 총력을 다 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더라도 성공을 낙관하기 어려운 풍파를 눈앞에 두고 소득주도성장 이론이나 실험하면서 기초 체력을 약화할 때가 아니다. 이미 이상 징후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이상 소득주도성장의 실험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 증원과 정규직화 등 탈시장적 고용확대는 일단 중지하고 국가경제 상황을 전반적으로 심층 점검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에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재벌개혁과 금융개혁도 중요하고 에너지 전환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처럼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고 해외부문의 회오리가 눈앞에 들이닥칠 때에는 일처리의 선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경제의 기본을 흔들 주요 개혁은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삼성은 국내적으로는 악명도 높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우량기업이다. 보수와 근로조건은 국내 근로자들의 취업 희망 선호 1위일 정도로 다른 기업보다 우량하다. 그런데도 위해적 업무환경을 감찰한다는 명분으로 기술적 기밀사항인 공정도면을 공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이미 종결된 노조설립 방해혐의를 새삼 다시 조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오너가 회사 돈을 쌈짓돈처럼 빼 쓰는 월권은 막아야 한다. 승계과정의 불법행위도 근절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노조 없이도 이미 최고 수준의 급여와 근로조건을 제공하는 기업이 그래도 노조를 설립하겠다는 근로자들과 다투는 사안의 시급성은 현 시점에서 그리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법규 위반을 의심하여 상대적으로 더 우수한 근로 환경 문제를 들쑤시기보다는 삼성 같은 기업들이 더 투자하고 더 고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더 좋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결국 공평한 소득분배가 성장에도 기여한다는 이상을 추구한다. 그러나 소득분배구조를 공평하게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공평하게 유지하는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는 결론은 논리의 비약이다. 특히 현재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우에는 오히려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징후가 예상보다 일찍 나타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멈추어야 한다.     필자소개                 이승훈 교수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現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감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꼭 1년 전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으니,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또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23년 만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참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잔혹사는 계속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정부 수립 후 실질적 대통령 전원이 하야, 탄핵, 피살, 자살, 수감되거나 말년에 측근 비리로 흠집이 생겼다. 정치 선진국에서 보는 것처럼 온 국민에게 존경 받는 퇴임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인가.    우리가 더욱 참담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 내용들을 알고 나서다. 그는 검찰 소환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속영장을 통해 공개된 범죄 사실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전 대통령이 과거에 투자했다가 손해 본 돈을 되찾기 위한 소송에 공무원을 동원하고 변호사비 60억 원을 삼성에 대납시킨 혐의는 충격적이다.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인사 청탁 등 명목으로 수십억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도 있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는 국정원 특수 활동비 수수와 다스 실소유주로서의 횡령 등 혐의도 포함됐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가 구치소에 들어가는 심야 시간에 누군가 거기까지 찾아가 차량을 향해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법과 원칙을 무너뜨린데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에게 적용된 거액의 뇌물·비자금 등 여러 혐의 내용을 보면, 불법 여부와 정도를 떠나 공직자 처신이 이래도 되는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한 우리 유권자(투표율 63%) 절반 가까이(득표율 48.7%)가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의 일은 군사정부, 권위주의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무능력한 지도자가 공적 소통에 실패할 때 어떤 국가적 불행이 생길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경우는 뭐라 설명하기가 민망하다. 더욱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던 이 전 대통령이기에 우리는 도덕적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모르는 일'이라거나 서류가 ‘조작’되었다거나 과거 측근들이 처벌을 모면하려 거짓 진술을 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여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에서 우리는 법과 원칙이 왜 강조되어야 하는 지를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4년 전 이맘 때 바른사회운동연합을 창립할 즈음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당시 바사연은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부패, 부조리, 도적적 해이와 직업윤리의 실종, 극심한 이기주의와 책임의식의 실종, 신뢰의 상실 등이 만연돼 있다”며 “부패의 추방과 함께 법치주의의 확립이 없이는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고 일한 만큼 보상 받는 공정하고 품격 있는 사회 건설은 없다”고 했다.    지난 4년 애를 썼지만 달라진 것이 없음을 서글퍼하기 앞서, 우리가 목표로 했던 ‘법과 원칙’에 충실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또 찾는다.     2018. 3. 29.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신 영 무       필자소개                             신영무 상임대표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 법학 박사 제46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환태평양변호사협회 회장 법무법인 세종 설립, 대표변호사 現 법률사무소 신앤박 대표변호사現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  

 한반도 분단도 70년을 넘겼다. 그 동안 남과 북의 극한적 적대관계는 햇볕정책의 유화국면과 연평해전의 교전상태를 번갈아 거치면서 여전히 긴장상태다. 최근 미국의 최고 강도 대북 봉쇄는 결국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을 우회한 북미 정상회동을 두고 국내 언론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고무되어 ‘차이나 재팬 패싱’등의 표현을 쏟아낸다. 그러나 남이나 북이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만 상대해서 해결 볼 한반도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북핵은 남•북•미 3측만이 아니라 주변 4강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린 한반도 문제다.    핵과 미사일을 내걸고 협박하던 북한과 ‘선제타격’론으로 되받아치던 미국이 일단 대화에 합의한 것은 외견상 극적이지만 사실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 동안 북한은 핵폐기의 선행조건으로 한미공동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였지만,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에 대비한 방어훈련을 중단할 수 없는 남한과 미국은 무조건적 핵폐기를 요구하였다. 쌍방의 일방적 요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북한은 시간끌기에 성공하였고 수시로 보상만 받다가 끝내 핵개발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고강도 대북 제재와 더불어 대북 석유공급 중단 등 결정적 조치를 취하도록 중국을 압박한다. 최근의 통상압력 강화와 대만여행 자유화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하고도 대북정책 라인에 강성 매파를 배치하는 등 선제공격 태세를 정비하는 것은 이도저도 안되면 때린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미국에게 북미정상회담은 북의 요구사항을 경청할 기회가 아니라 최후 공격 이전에 한번은 만나야 하는 예정된 수순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게는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큰 성과다. 세계최강인 미국 대통령과 대등하게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정은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높아진다. 또 전통적 벼랑 끝 전술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미국의 대북제재가 전례없이 강화되자 불리한 현 국면을 흔들어 볼 기회로 북에게는 정상회담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김정은은 그 동안 한미군사훈련을 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핵개발은 그 대응책이라고 주장해왔다. 핵보유국을 공격할 나라는 없으니 핵만 보유하면 병력이나 국방비도 크게 줄여서 예산을 절감하고 이 돈을 경제개발에 투자하는 ‘핵개발과 경제발전의 병진’ 노선이 가능해진다. 그럴듯한 논리이지만 핵은 훌륭한 방어무기를 넘어서서 강력한 공격무기다. 특히 미사일과 결합하면 가공할 위협수단으로 부상한다.    미국은 과거 38선을 그었고 6.25전쟁 중에도 38선을 돌파하는 북진을 반대하고 휴전을 강요하였다. 북핵만 없다면 미국이 대북공격을 감행할 리 없고, 남한 단독으로 북침할 리는 더더욱 없다. 실제로 남한은 햇볕정책 이래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겠다고 줄곧 약속해왔다. 남북이 평화공존하면서 북한경제를 손쉽게 개발할 길이 활짝 열려있는데 이 길을 외면한 북한의 핵개발은 분명히 경제발전에 필요한 투자재원 마련과는 다른 무엇을 목표로 한다.    분단 이후 벌어진 남북 간 체제경쟁의 승자는 누가 보아도 남한이다. 그리고 체제경쟁을 시작한 김일성의 손자는 경쟁 실패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런 김정은이 햇볕정책을 받아들여 남한의 도움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한다면 북 체제의 패배를 자인하는 셈이다. 체제경쟁 패배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김일성과 그 아들 손자에게 자기부정을 강요하는 햇볕정책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아직까지는 김정은이 내부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지만 북 체제는 이미 국민생존이 불안하도록 기본이 붕괴한 상태다. 몰락이 시간문제인 만큼 김정은은 터무니없는 위험까지도 부담을 마다할 처지가 아니다. 특히 남한의 경제기적에 필적할 업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핵보유 강성대국으로 도약하면 경제난에 동요하는 민심을 한동안은 달랠 수 있고, 존재 자체로 북 세습체제의 최대 위협인 남한까지도 자신의 통제 범위에 넣을 수 있다. 김정은 스스로 남한의 경제기적을 지배하게 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한 결코 자발적 핵폐기는 없다.    김정은의 회담 전략은 궁극적으로 핵 미사일과 남한 지배의 기회를 맞바꾸는 것이고 당장은 미국의 공격과 중국의 제재를 피하는 것이다. 우선 트럼프에게 한미훈련 중단과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고 더불어 막대한 경제지원을 바랄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 대북한용만은 아닌데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만으로 훈련중단이나 미군철수를 수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데 경제지원 요구는 어떨까?    핵폐기 조건이 합당하다고 대규모 경제지원을 수용한다면 후속 실무자 협의가 필요하다. 북한은 그 기간 동안은 석유공급 중단이나 선제공격을 피할 수 있는데, 트럼프가 이 시간벌기를 수용할 리 없다. 결국 트럼프의 요구는 ‘닥치고 핵폐기’일테고 김정은도 고분고분할 수 없으므로 회담은 결렬이다. 미국은 결렬 이후 한 차례 더 중국을 압박하고 그래도 중국이 응하지 않으면 정말 북한을 때릴 태세다.    사업가 출신 트럼프는 전쟁보다 협상에 능하고 북핵도 협상으로 해결하고 싶다. 그러나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전쟁 위협까지도 최대한 구사한다. 중국이 석유공급중단을 끝내 거부한다면 본토 핵피격의 위험에 노출된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밖에 없다고 나설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핵피격을 선제적으로 막겠다는 미국의 군사행동을 저지할 명분도 없다. 김정은의 섣부른 미 본토 핵공격 위협이 미국의 매우 거친 반발을 불러서 감당키 어려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압박은 전방위적인데 결국 중국은 미국과 이면합의를 거쳐서 대북 석유공급 중단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별 소득 없이 핵을 포기한다면 김정은은 내부적으로 끝장이다. 그런데 중국이 석유공급만 중단해도 김정은은 역시 끝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결국 김정은을 제거하고 북핵을 폐기하는 데 합의할 것인데 우리에게는 이 합의에 수반하는 조건이 문제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대비해야한다. 이 기회에 잘하면 통일도 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이 수용할 통일한반도 모습을 마련하여 양강을 설득해야 하고 통일이 불가능하면 최소한 북쪽에 평화공존이 가능한 체제가 들어서도록 공작해야한다. 현재의 북핵 위기는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차례 정상회담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필자소개                 이승훈 교수   전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