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로 본 우리 사회의 품격
미술사로 본 우리 사회의 품격
필자 : 이성낙 교수
독일어에 ‘pompö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호화찬란한, 야단스러운, 치장한, 과장된’이란 뜻으로, 인위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의 낱말입니다. 이를 청각적 측면에서 보면 ‘시끄럽고 떠들썩하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순한, 수수한, 은은한’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로는 ‘dezent’가 있습니다. 이를 청각적 측면에서 보면 ‘조용한’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향기가 바닥에 깔린 단어입니다. (주해: 프랑스어
pompadour, decént, 독어 pompös, dezent, 영어 pompous, decent, 발음은 달리하여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때 ‘신흥 부자’,
‘벼락부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호화로운
의상을 선호하고 값비싼 귀금속으로 치장한 그들을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pompös입니다. 요컨대 pompös는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현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이는 1930년대의 ‘Modernism’을 이끈 문화지표, 즉 단순하고 조용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Minimalism’과는
거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건축예술계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가 절묘하게 축약한 “Less Is More(더
작은 것이 더 많다)”가 모든 것을 대변합니다. 청각적인 ‘조용함, 차분함’이 시각적인
미니멀리즘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1980년대의 일화입니다. 당시 독일 병원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유럽 여행을 온 한국인 일행의 안내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독일 함부르크로 오는 일정이었습니다. 필자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정대로 잘 도착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공항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자니 궁금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안내소를 찾아가 공항 내 방송으로 그들과 연락할 방법이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안내소 직원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공항 내 방송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나 독일
공항에서는 방송을 통해 ‘어떤 알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공항이 조용했던 것입니다.
반면 국내 공항은 각종 공지
사항으로 시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양한 비행편의 시간과 탑승구를 알려주느라 바쁩니다. 탑승객이 면세점에서 쇼핑하느라 정신이 없지는 않은지, 또는 휴식
공간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라도 하듯 누차 반복하면서 ‘애타게’ 방송합니다. 소음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이처럼 Minimalism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생활 주변에
다양한 모습으로 널려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노라면 스피커를 통해 각종
안내가 들려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마시고 손잡이를 꼭 잡아주세요” 등등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지하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가다 보면 지겹기도 하고 짜증이 납니다.
에스컬레이터라는 편의시설을
마치 엊그제 도입하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지칠 줄 모르는 소음도 문제이지만 고객의 수준을 얕보는
듯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전혀 ‘조용하거나 차분한(decent)’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지하철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지하철이 최고 수준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화장실을 비롯해 역마다
설치된 다양한 시설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시설, 즉 Hardware 측면에서 우리 지하철은 자랑할 만합니다.
그래서 운영, 즉 software 측면에서 아쉬움이 더 커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철역의 각종 시각 안내시설은 나무랄 데 없습니다. ‘전전 역’을 출발한 차량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려주는 전자 모니터 화면은 이용자의 마음을 여유롭게 합니다. 그런데 차량의 접근을 알리는 신호음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길고 음량 또한 너무 높아 소란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언어적인 안내가 뒤따릅니다. 실로 ‘괴음(怪音)’ 수준입니다. 심지어 청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8~9데시벨을 넘나들기도 합니다. 특히 스피커의 위치에 따라서는 더 심각한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차량이 이동하면 그
움직임에 따른 진동 때문에 전동차 내의 음량은 7데시벨을 훌쩍 넘습니다. 거기다 각종 안내방송이 다음 역에 이를 때까지 쉼 없이 이어집니다. 물리적으로
너무나 시끄럽습니다. 공지 내용은 잡음에 묻힐 뿐입니다.
역에 도착하기 전의 안내방송도
지나치리만큼 친절하고 겸손합니다. 모든 존댓말을 동원합니다. 역에
도착해서는 “출입문이 열립니다”, “출입문을 닫겠습니다”를 꼭 두 번씩 반복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자랑하고픈 신흥 부자가
선호하는 pompös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반(反)모더니즘적인 현상입니다.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를
운행하는 전철의 역사는 100년이 넘습니다. 당연히 시설 (Hardware)적인 측면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중 소음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몇 해 전부터 차량의 철제바퀴를 고무 타이어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결 조용해서 승차감이 좋습니다. 거기에다 안내방송도 간결합니다. 한
예로 역에 다다르면 “이번 역은 루브르입니다”가 아니고, “루브르, 루브르”라고만
간략하게 한 번 알립니다. 그리고 차량이 멈추기 직전 다시 “루브르, 루브르”라는 짧은 방송이 나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존댓말과 ‘조심하라’라는 어떤 수사도 없습니다. 간단명료한 메시지만 있을 뿐입니다. 생활 속의 미니멀리즘입니다.
돌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은 국회의사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은
늘 소음을 넘어 폭음이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명소’입니다.
음주운전을 검사하듯, 과속차량을 단속하듯 의사진행을 할 때 음량(音量) 측정기를 도입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해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이제 소음의 척도가
문명사회를 가늠하는 품격의 잣대인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조용함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품격이기도 하지만, 모든 문명사회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는 시끌벅적한 신흥 부자의 틀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품위 있는 사회로 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세계적 흐름인 미니멀리즘과 일맥상통하는 용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우리
사회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조용함을 추구하고 그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기본이 되어있다고
믿기에, 변화를 간절히 기대하게 됩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
연세대
의대 교수 ,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
가천대
명예총장 , 한국의 •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
(사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이성낙 | 2020-11-10 | 조회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