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적응 不在와 탈원전·가덕도
기후변화 적응 不在와 탈원전·가덕도
필자 : 김영오 교수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과실연 상임대표)
우리나라 ‘과학의날’인 4월 21일,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는 4월 22일 ‘지구의날(Earth Day)’을 기념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가 매년
기획된다. 민간이 주도하는 지구의날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미 20세기 말부터 지구온난화의 주범을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로 지목하고, ‘감축(mitigation)’이라는 해법에 국제 연대를 통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2050년 탄소 중립’을 야심 차게 전 세계에 표명한 만큼 지나간 두 정부에 이어 또다시 스스로 세운 감축 목표마저 지키지 못하는
양치기 소년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설상가상 기후변화 ‘대응’이 ‘감축’과 더불어 ‘적응(adaptation)’이라는
2개의 축으로 굴러가야 함을 상기할 때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기후변화로 일어날 결과를
미리 전망하고 대비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장의 기회로 삼는 전략이 바로 적응이다. 감축이
미래 지구를 살리기 위한 미션이라면, 적응은 내가 사는 시대를 위한 행동이다. 또한, 감축이 전 지구적 차원의 동참이라면, 적응은 내가 속한 로컬에서의 액션이다. 하지만 감축에 비해 적응은
도외시됐던 게 현실이었다.
적응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시급성에 있다.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교란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4월에 폭설이 오기도 하고, 동해에 명태가 없어지고 있으며, 겨울 모기가 일상화하고 있다. 처절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교란은 수십 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류가 이미 150년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한 결과, 지금의 감축 노력이 즉시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이기에 그렇다.
기후변화 적응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생활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여름옷 출하 시기가 빨라질 것이고, 감염병 접종 시기가 바뀌어야 할 것이며, 사과 대신 오렌지를 키워야
할지 모른다. 어느새 커져 버린 눈앞의 현안(懸案)에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 모두 적응 분야에
대한 투자의 확충과 면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100쪽 분량의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발표했다. 적절한 시기에 포괄적 범위를 다루고 있는 대책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후변화 적응 정책의 기조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기후변화 시대의 정책 기조는 기후변화의 핵심 특성에 기초해야 한다. ‘깊은
불확실성(deep uncertainty)’이 바로 그것이다. 기후변화
시대는 불확실성이 매우 크고 심지어는 그 가능성조차도 추정할 수 없다는 개념이다. 마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을 운전하는 상황이 우리의 미래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정보의 홍수로
인간계는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이 예기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깊은 불확실성’은 기후변화의 영역을 넘어선 키워드임이 분명해 보인다.
깊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강건(robust)’하면서도 ‘기민(agile)’해야
한다. 강건한 정책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작은 길을 택한다. 1등은 못 하더라도 폭망은 않는 정책이 그것이다. 반면, 기민한 정책은 수시로 평가하면서 늘 시행착오에서 배워 나간다. 즉, 일사천리로 추진하지 않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정책이다. 전 세계가
이런 정책 기조로 국가 경쟁력을 키워 가야 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20년은 걸려야 할 4대강 사업을
2년 반 만에 완공했고, 수십 년간 어렵게 쌓아온 세계적 원전 시설과 기술이 일시에 비가역적(irreversible) 추락의 길로 들어섰으며, 가덕도신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위험천만한 급행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되고 있는 후진적 정책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상기온으로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는 물론 벚꽃과 라일락까지 함께 만개한 2021년 4월의 봄, 강건성과
기민성이 담긴 국가 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출처 : 문화일보]
바른사회운동연합 | 2021-04-23 | 조회 1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