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진료권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필자 :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 •약사평론가회 前 회장(사)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여러분의 진료권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이솝 우화'와도 같은 실화가 있습니다: 어떤 의사가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그곳 면허를 취득하고 개원의로 새롭게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회에 잘 적응하고 열심히 진료한 덕분에 명의가 왔다는 소문이 퍼져 환자가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그 분위기에 고취되어 휴일도 없이 환자 진료에 매진하였습니다. 환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보건소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의원은 폐쇄 조치를 받았습니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 지적사항이었습니다. 그 지역 동료 의사들은 예외 없이 주중에 한 번, 한나절을 쉬는데 새로 온 의사는 쉬는 날에도 열심히 환자를 보살핀 것이 ‘죄목’이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것을 훌륭한 덕목으로 알았던 ‘이민자 의사’는 억울하기 그지없었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그는 공정거래법이 왜 존재하여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환자를 보며 작성한 의무기록카드>가 문제의 핵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문진(問診)하며 기록해야 할 사항이 너무 부실하였던 것입니다. 의사가 진료를 시작하면서 환자와 나눈 문답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이것을 ‘의무기록’이라 합니다. 그래서 의무기록에는 유년기부터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앓았던 질병이나 수술을 받은 경력 등을 상세히 기록하는 데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의료행위’입니다. 환자가 의원이나 병원을 처음 가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일반적으로 20~30분이 걸립니다. 그럴진대, 그 의사는 "방문 이유: 3일 전부터 고열 호소 내원, 체온 38°C, 진단: 고열을 동반한 유행성 감기. 치료: 해열제 'AAAA' 8일분 처방. 항생제 'PPPP' i.m.(근육주사)."라는 내용만을 의무기록지에 남겼습니다. 모든 ‘의무기록지’가 그렇게 부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결과 보건당국은 ‘의사면허 자격 영구 박탈’이란 행정조치를 내렸습니다. 행정당국은 그를 기본 교육이 안 된 ‘사이비 의사’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이민 간 그는 한국 의사, 우리의 동료였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국내 의료계의 중진 모임에서 들었을 때, 그 누구도 반론을 하지 않고, 씁쓸한 침묵만을 지켰습니다. 필자가 1975년 귀국하여 국내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던 무렵의 진료환경은 여러 면에서 열악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안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환자의 재정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필요한 약을 처방하였습니다. 고가 약을 처방하려면, 환자에게 먼저 재정부담이 발생할 터인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하였습니다. 소신껏 처방하며, 마음껏 치료하지 못해 괴로움이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료비가 부담이 커서, 당시 우리 사회에는 ‘우환(憂患)이 도둑’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77년 우리나라에도 5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된 것입니다. 당시 정치인들은 한사코 “국민소득 한 사람당 겨우 ‘일천 불($1,000)’인 나라에 웬 ‘보험제도’냐고 아우성쳤고 국민소득 ‘일만 불($10,000)’도 안되는 나라에서 “무슨 건강보험”이냐고 심하게 질책하였습니다. 의료보험제도 시행이 ‘시기상조’라며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상을 깨고 국내 의료보험제도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경제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의료계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정치권의 개입으로 국내 의료계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따로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국내 의료계의 문제는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쏠림현상입니다. 의료계에는 ‘의료전달체계(Healthcare Delivery System)’라 해서 가벼운 증상의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을 막고, 거주지 개원의나 중소병원으로 유도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오래전에 개발한 것을 국내 의료계에 접목한 ‘시스템’으로 국내 의료계가 창안해낸 ‘별난 시스템’이 결코 아닙니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환자진료의뢰제도’가 국내에서 가시화된 것은 ‘의료보험제도’와 궤를 같이합니다. 그런데, ‘의료전달체계’는 정치권의 ‘비(非) 전문적 개입’에 따라 ‘진료권역(圈域)제도’가 해체되면서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환자는 거주지역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진료권으로 옮겨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서울로의 환자 쏠림’현상을 초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소재 대형병원의 존재의미가 크게 약화·손상되었습니다. 그 무렵 대학병원에서는 예약제도에 의거, 평균 약 50명 정도의 외래환자를 진료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약 없이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자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고 “외래를 찾아온 환자는 당일 진료를 받아 주라는 ‘청와대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N 정권 시대)병원 행정책임자는 환자가 많더라도 진료에 협조하라는 ‘행정협조’를 각 진료진에게 내립니다. 병원행정 책임자는 의사가 환자를 많이 볼수록 병원경영에 나쁠 리 없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나온 행정명령은, 대학병원 또는 대형병원의 진찰비(수가)가 일반 개원가나 중소병원의 진료비와 동일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였습니다. 즉, 대학병원이나 개원가나 진찰료가 같아진 것입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는 다시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유발했습니다. (P 정권 시대)여관이나 유명호텔의 숙박료나 제반 시설 및 서비스료가 같다면, 누가 고급호텔을 마다하고 여관엘 가겠습니까. 대학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은 결국 진료의 질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그 한 예가, 대학병원 심장내과에서 한 담당 교수가 3시간 외래진료 시간에 80~10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진료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환자당 2분도 채 안 됩니다. 세심한 문진이 필수적인 심장병을 진료하는 임상과인데도 말입니다. 뉴질랜드발 ‘우화’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대단히 염려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대학병원의 중진 교수가 증상이 가벼운 환자를 보살피는 데 시간을 쏟는 만큼, 중증 환자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역(逆)결과로 이어지는 한국적인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전문성 없는 시쳇말로 ‘대중영합주의’의 산물입니다. 주해(註解)를 붙입니다.국내 ‘의료보험제도’는 개보험(槪保險). 즉 모든 국민이 보험제도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의료보험법에 제한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보험과 다르다 뜻입니다. 우리나라와 의료시스템이 비슷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환자의 쏠림 현상이 이슈화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권 의식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의료진의 인권도 살피면서, 환자의 적정 진료 수준도 감시합니다. 그 한 예가 1990년대 이후, 6인용 입원실의 운영을 금지하고, 2인실 및 3인실 운영체계로 전환한 것입니다. 바로 정부가 진료를 인권 차원에서 바라본 조처입니다. 국내 대학병원에서 교수급 중진 의사가 100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절대 해외 대외비 사항’이어야 합니다. 이는 의사는 물론 환자의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저개발국형 의료수준’을 숫자가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 일화’에 국내 중진 의사들이 ‘냉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던 정치권과 오늘날 빠르게 무너져가는 의료계의 현실을 외면하는 정치권이 과연 다른 점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내 의료계가 더 붕괴하기 전에 특별한 정책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정치권을 향하여 외치고 호소합니다. 이제, 정치권이 앞장서서 우리 국민의 무너진 건강권을 챙겨야 하고 한 차원 높은 환자의 진료권을 인권 차원에서, 국가가 다시 보살펴야 할 시점입니다. 국내 의료계의 붕괴는 바로 국민 모두의 소중한 진료권이 쇠잔해진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국내 의료계가 무너지는 굉음(轟音)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는 이유입니다.
바른사회운동연합 | 2021-08-31 | 조회 4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