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의 정치카페] 한동훈은 ‘끼인 리더십’ 극복 · 이재명은 ‘독주의 낙인’ 탈피 급했다
한동훈은 ‘끼인 리더십’ 극복 · 이재명은 ‘독주의 낙인’ 탈피 급했다
(2024.08.27._문화일보 게재)
■허민의 정치카페 - 韓-李 ‘대표회담’ 셈법
韓은 ‘강력 대권주자’, 李는 ‘협치
기획자’이미지 원해…
9월 초 여야대표회담 열릴 듯
합의 도출 노력 아닌 전투적 ‘톤 앤드 매너’ 구사 가능성…
민생 자리할 공간 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하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화답한 여야대표회담이 9월 초엔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코로나 와병으로 미뤄졌지만 두 여야 대표의 의지가 강하다.
이 대표는 ‘국정 협치의 기획자’로, 한 대표는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각인되길 원한다. 거꾸로 이 대표에겐 ‘입법 독주’ 이미지 탈피가, 한 대표에겐 ‘끼인 지도력’ 극복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이재명의 셈법
이재명 대표는 8·18 전당대회에서 연임에 성공하자마자 두 개의 회담을 제안했다. 여야대표회담은 한동훈 대표에 의해 즉각 수용됐고,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은 “국회 정상화가 먼저”라는 용산 쪽 반응으로 사실상 거부당했다. 이 대표는 왜 회담을 제의했을까.
첫째, 일극체제·일인지배체제 비판에 대한 방어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얻은 85.4%의 득표율은 절대적 지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제1야당을 끌어갈 동력이 되겠지만, 당내 다양성의 소멸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취약점이다. 민주당 계열로는 김대중(DJ) 이후 첫 대표 연임이라는 부담감 해소도 절실했다.
둘째, 사법 리스크 방탄이다. 이것 때문에 당헌도 개정했고, 비명횡사 공천했고, 당 대표도 연임했다. 2년 전 보궐선거로 초선 배지 달자마자 당 대표가 됐고, 이번에 연임할 만큼 절박하다. 여야 대표의 만남은 사법 리스크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협치 지도자상 과시 필요성. 거대 야당의 국회 폭주, 입법 독재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여당 대표를 만나는 포용력 있는 지도자, 의회와 국정 협치를 중시하는 리더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는 중도 확장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다.
친명 A 의원은 “이 대표가 ‘당 대표 연임하면 스타일을 확 바꾸겠다’고 누누이 약속했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소득세 등 자신의 정책에 번번이 반대 입장을 개진한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유임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한 대표가 친정체제 구축을 위해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교체한 것과 대비된다. 말 많고 탈 많던 강성 친명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를 일대 개편하겠다는 구상도 변화의 표징으로 읽힌다.
◇한동훈의 계산
한동훈 대표는 왜 이재명 대표의 회담 제안을 단박에 받았을까. 양자회담은 정치 고수들의 이익이다. 다자회담에선 결과에 대한 책임이 n분의 1로 돌아가지만, 양자회담에서는 어느 일방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정치 경험도 부족하고 당내 결정권도 약한 상황에서 한 대표는 왜 양자회담 리스크를 무릅쓰려 할까.
첫째, 차기 대권주자 위상 확인이다. 한 대표는 ‘끼인 지도력’이다. 구주류 친윤과 신주류 친한, 원내와 당, 원내대표와 대통령 사이에서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다. 여당 대표로서, 나아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정치적 위상과 격을 높이는 과제가 시급했다.
둘째, 그 연장에서 당내 장악력 강화가 필요하다. 7·23 전대 이후 한 대표와 여당에 대한 긍정 여론은 하락 추세다. 친윤에서 친한으로의 ‘환승연애’도 주춤한다. 당내 PK 출신 B 의원은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우하향하는 국민의힘을 우상향시키겠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특별한 보여주기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그립 강화를 위한 계기가 절실했다.
셋째, 이재명과 맞짱 뜨기다. 한 대표는 비록 정치 경험은 부족하지만 정무적 판단력이나 정책적 민감성은 뛰어나다는 자신감의 소유자다. 현재로는 대체 불가능한 범야권 대권주자 이 대표와의 회담을 통해 그와 나란히 선 모습을 보이면 성공일 것이다. 한 대표가 ‘TV 생중계’를 강하게 주문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 대표는 이 대표가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쾌유를 기원하는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쾌차해 회담을 생산적으로 이끌길 기원한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한 대표의 대화정치 시그널은 집권여당 대표로서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어내 이를 발판으로 미래를 이끌 정치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3종류의 회담
회담엔 3종류의 얘기가 존재한다. 필요한 얘기, 합의된 얘기, 공개할 얘기. 양측은 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필요한 얘기’를 나눈다. 이어 ‘합의된 얘기’ 가운데 ‘공개할 얘기’만 언론브리핑 등 형식으로 국민 앞에 내놓는다. 합의한 얘기라도 공개할 수 없는 내용도 있는데 ‘이면합의’가 그런 것이다.
여야대표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있는 의제는 크게 세 가지. ①민생과 경제 현안 해법 모색 ②국정 협치 방안 논의 ③‘채상병 특검법’ 처리. ①은 합의가 어려운 의제들로 꽉 차 있다. ②와 관련해서는 상징적 기구 구성 설치를 거론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가장 민감한 건 ③인데, 이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같은 난제일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원내대표 채널에서 협의할 사항이다.
두 대표가 만나는 것만으로도 여야 신뢰 구축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둘의 회담이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여소야대 현 의석 구조에서 원외 소수 여당의 대표는 제1야당의 대표와 동격으로 대접받는 그림을 원하지만, 이 대표의 시선은 한 대표를 넘어 윤 대통령을 향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여야대표회담 개최를 위한 양당 간 협의는 한 대표의 ‘TV 생중계’ 제안으로 잠시 논란을 빚었다. 회담은 그 속성상 과정과 절차의 공개를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공개되는 순간 그건 회담이 아니라 논쟁 혹은 ‘토론 배틀’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야대표회담이 아니라 대권주자 토론회가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영수회담이든 여야대표회담이든 그걸 생중계한 사례는 없다. 민주당 C 의원은 “국민으로 하여금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가공식품 제조 과정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정치 혐오를 부추길 일이 있느냐”고 말했다. 논란 끝에 한 대표는 ‘TV 생중계’를 사실상 접음으로써 현실정치논리를 받아들였다.
◇톤 앤드 매너
두 대표는 회담에서 필요한 얘기를 나누고, 일부는 합의하고, 일부는 공개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두 사람이 합의를 향한 노력보다는 이미지 관리에 더 신경을 쓸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이 ‘대화의 톤’을 유지하거나 ‘타협의 매너’를 선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둘 모두 공격적 본성을 드러내면서 전투적 ‘톤 앤드 매너’를 구사한다면 민생이 자리할 공간이 얼마나 될까.
■ 용어설명
‘여야대표회담’은 2004년 이전엔 없었음.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맡던 시절엔 영수회담이 곧 대표회담이었기 때문. 2004년 정동영·박근혜 회담이 여야대표회담의 성과를 낸 첫 회담으로 기록.
‘톤 앤드 매너’란 주로 비즈니스에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일관된 ‘어조와 태도’를 말함. 이미지, 표현법, 말투, 분위기 등으로 대화자의 아이덴티티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
■ 세줄 요약
이재명의 셈법 :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 방탄과 함께 일극체제 비판에 대한 방어가 필요. 또 ‘국회와 국정 협치의 기획자’로 비쳐져 독주·독선 이미지로부터의 탈피가 시급. 이것이 여야대표회담을 제안한 이재명의 셈법.
한동훈의 계산 : 한동훈에겐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당내 장악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큰 상황. 이재명과의 맞짱을 통해 ‘끼인 지도력’ 극복도 노려. 이와 한, 둘의 의지로 여야대표회담은 조만간 이뤄질 것.
톤 앤드 매너 : 회담에는 필요한 얘기, 합의된 얘기, 공개할 얘기가 존재. 하지만 두 대표가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보다 이미지 관리에 더 신경을 쓰면서 전투적 ‘톤 앤드 매너’를 구사한다면 민생이 자리할 공간은 없을 수도.
허민 *(現)문화일보 대기자/ 전임기자 | 2024-08-28 | 조회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