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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자문위원, 자유칼럼그룹- “사법 신뢰 훼손”, 진심일까 허구일까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8-11-19
  • 조회수1244
얼마 전 임기를 마친 한 대법관이 “사법 신뢰 훼손이 너무 안타깝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 법원 청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그 인사말이 ‘넋두리’처럼 들려 아무런 무게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법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올곧지 아니한 길을 걸어온 결과로서 ‘자업자득’이라는 사자성어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근래 사법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의 권위가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습니다. 국내 삼권분립 체계가 무너지는 지각 변동의 굉음(轟音)이 들려오고 있으니 밑바닥 법원 상황은 어떠하겠습니까. 모르는 체하기에는 너무나 사안이 범상치 않아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국가 시스템이 아무리 대통령 중심제로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움직이는 동선에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나타나는 것도 모자라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장이 ‘동행’하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본 지 이미 오래입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대통령제이든 내각책임제이든 ‘정치꾼’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분명 정상적인 풍토는 아닙니다.
 
 
사법부의 사회성이 입법부나 행정부와 아주 다르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필자는 그런 모습을 얼마 전 독일을 여행하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칼스루에(Karlsruhe) 지방을 지나던 중 통일된 독일에서도 ‘연방대법원 (Bundesgerichtshof)’이 여전히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행정부를 상징하는 대통령궁이나 총리 관저가 서독의 옛 수도이던 ‘본(Bonn)’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한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해서 확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연방대법원 청사는 통일된 독일에서도 수도 베를린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칼스루에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바로 ‘삼권분립’의 정신 때문입니다.
 
 
이를 극명하게 시사하는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1978년 언론 매체에 가십 수준의 말단 기사로 실린 이야기입니다.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1918~2015)가 독일 총리로 있을 때 60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늦은 저녁 시간에 연방대법원장 에른스트 벤다(Ernst Benda, 1925~2009)가 칼스루에에서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려와 총리 공관 뒷문으로 들어가서는 잠시 축하 인사를 나누고 다시 관저를 조용히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그의 그런 모습을 누구도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대법원장이 혹시나 ‘삼권분립 정신’에 저촉될까 봐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건 당시 사법부 수장의 몸가짐이 매우 감명 깊어서일 겁니다.
 
 
‘비전문가’인 필자도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핵심 사상은 ‘삼권분립’에 있다는 것을 배워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 후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사법부와 행정부 수장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나라의 ‘삼권분립’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법원이 행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다고 아무리 방어적으로 주장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데, 근래에는 심지어 법원이 여론에 민감하게 휘둘린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사를 떠나는 대법관의 모습에서 그 어떤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왜 그리도 ‘법정 구속’이며 ‘압수수색’을 법원에서 쉽게 ‘윤허’해왔는지 정녕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진료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어린 환자가 생명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법원은 해당 의사 3명 모두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필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담당 의사의 진단에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법정 구속’만큼은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비단 의사에게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닙니다. 법원 1심 재판에서 ‘법정 구속’되어 근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2심 재판에서 ‘법정 무죄’로 풀려난 사례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봐왔습니다. 그러면 1심에서 ’오판’을 한 판사에게는 어떤 징벌을 내려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많은 분들이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독일 디젤 스캔들(Diesel-Scandal)'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2015년 12월 미국 연방환경청 당국이 공식적으로 'VW-Diesel' 문제를 제기하자 마르틴 빈터코른(Martin Winterkorn) 회장이 ‘자진해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루페르트 슈타들러(Rupert Stadler) 총괄회장이 구속됩니다. 사건 발생 후 무려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말입니다. (자료 출처: Der Spiegel, 2018.10.20.). 국내 현실에서 보면, 그런 ‘느림보 판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빨리빨리 문화’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의 핵심은 인권 보호 정신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법부가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하면서 비수(匕首)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히는 걸 경계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사법 신뢰 훼손’이라는 자성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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