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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자문위원, 교수신문- “책은 목차부터 읽는 거라네”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8-10-31
  • 조회수1305
스승의 스승 6. 평생을 이어온 뷔허 교수의 가르침: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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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목차부터 읽는 거라네”, 뷔허 교수의 가르침은 이성낙 명예총장의 가슴에 남았다.

공부를 평생의 업이자 즐거움으로 삼아온 내가 일생을 견지해온 중요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이 또한 뷔허 교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 1학년 2학기가 끝나고 장학금 신청 공고가 났다. 나도 장학금을 받고 싶어서 학생처에서 내용을 알아보니 교수 두 분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해부학 교수를 찾아가 쑥스러워하며 말씀드렸더니 “그동안 자네는 해부실습 과정에 임하는 자세를 보니 결석도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써줘야지”라며 기꺼이 써주시겠다고 하였다. 

나머지 한 장을 위해 뷔허 교수를 찾아갔다. 뷔허 교수는 “장학금. 받아야지, 그런데 추천서를 써줄 근거가 필요하지 않겠나?” 하시며 130쪽 분량의 [Erythrocyte(赤血球)]이라는 전문단행본(Monography)을 건네주시며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서 그 책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뷔허 교수의 연구실을 나오며 나는 ‘그까짓 거 누워서 떡먹기지‘라며 콧노래를 불렀다. 일주일 동안 나는 그 책을 대여섯 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거의 한 쪽에 달하는 헤모글로빈[Hemoglobulin(血色素)]의 분자구조식까지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달달 외웠다. 명예를 건 문제이기도 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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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뷔허 교수

일주일 후 다시 만난 뷔허 교수가 “자네 이 책을 열심히 공부했겠지?” 하고 물으시기에 “네, 여러 번 되풀이하며 공부했습니다.”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자세로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그렇겠지, 그럼 책의 목차에 대하여 아는 바를 이야기해보게”라는 것이 질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전혀 예기치 않은 질문에 너무도 당황해서 심장은 뛰고, 얼굴은 빨개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책을 달달 외울 만큼 열심히 읽었지만 정작 목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내 사정을 알아차린 교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책의 생명은 목차에 있네.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읽으면 저자가 어떤 구상으로 책을 썼는지를 알 수도 있으며,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목차를 읽으면 책의 내용이 다시 정리도 되고 이해도 한결 쉬워진다네. 그래서 책은 목차부터 읽는 거라네” 하시는 것이다. “자네에게 주는 교훈이니 기억하게 ...”라며 질의응답시간은 끝내고, 외국에서 공부하며 어려운 사항이 무엇이냐고 말머리를 돌리셨다. 

그 후 나는 60년 동안 뷔허 교수의 가르침대로 책을 읽어왔다. 심지어 소설이나 연애소설을 읽을 때도 먼저 목차를 살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목차가 없는 책은 왠지 ‘미완의 작품’인양 생각하기도 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60년 전, 나는 땅 설고 물 설은 머나 먼 독일 땅에서 젊은 나이에 유학생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알게 모르게 겪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그 장애물들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평생 공부하는 법과 책 읽는 법을 알려주신 뷔허 교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문득문득 생각난다. 큰 스승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가슴에 ‘귀한 가르침’, ‘큰 스승’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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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뮌헨의대를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대, 연세대 의과대에서 가르쳤다.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대 명예총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출처 : 교수신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님의 연재 중 글인 “책은 목차부터 읽는 거라네”란 제하로 <교수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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