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했고, 뒤이어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 ‘디지털 뉴딜’과 신재생 에너지 확산 등 ‘그린 뉴딜’을 위해 2025년까지 7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7월 발표 예정인 뉴딜 종합계획이 ‘일자리 뉴딜’, ‘도시재생 뉴딜’, 문화산업을 위한 ‘소프트 뉴딜’, 남북협력을 위한 ‘한반도 뉴딜’, 사회간접자본 개발을 위한 ‘건설 뉴딜’은 물론 지자체 숙원사업까지 포함한다면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이미 배포한 재난기본소득도 뉴딜의 일환이다. 이런 사업들은 모두 퍼주기 정책의 연장일 뿐 경제회생을 위한 것은 별로 없다.
위기에 대한 대응에 따라 나라가 흥할 수도 있고 추락할 수도 있다. 뉴딜이 성공했으니 한국판 뉴딜도 당연히 성공한다는 것인가? 뉴딜이 경제회복을 위한 산업부흥법(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제정을 포함한 체계적 사회경제개혁 패키지였지만, 한국판 뉴딜은 과연 국가적 난관을 헤쳐나갈 종합처방인지 의문이다. 더불어시민당 대표였던 최배근 교수조차 한국판 뉴딜은 역대 정부의 미래산업 육성정책과 현 정부의 ‘혁신성장’ 등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조지 맥짐시(George McJimsey)의 루스벨트 평전 ‘위대한 정치의 조건’에는 뉴딜정책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루스벨트는 미국 자본주의가 독과점 등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하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근본 치유책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최고 전문가들로 브레인트러스트(brain trust)를 구축·활용했으며 심지어 퇴임한 후버 행정부 관리들도 참여시켰다. 그는 ‘경제 전시(戰時)’라는 명분으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의회 개회 기간 중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매일 여야 의원들과 3~4시간씩 토론했다. 재임 기간 중 1000회 이상의 기자회견과 30회의 노변정담(爐邊情談) 방송을 통해 뉴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또한 공무원의 감축과 월급 삭감, 퇴역군인 연금 40% 삭감 등 대대적인 지출 삭감과 주세(酒稅) 부활 등 증세를 통해 균형예산을 편성하고자 노력했다. 뉴딜정책이 성공이었느냐는 의문도 있다. 기업에 대한 통제와 간섭으로 오히려 불황을 심화시켜 공황은 1939년까지 지속됐으며, 2차 대전이 경제위기 극복과 강대국 부상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라는 점에서 1930년대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이 비슷할지 모르지만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첫째, 위기의 성격이 다르다. 뉴딜이 독과점 등 자본주의 초기의 구조적 병폐 극복이 목표였다면, 코로나 이전 한국경제는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아왔고 코로나가 이를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에 한국판 뉴딜은 경제회생이 목표가 돼야 한다.
둘째, 뉴딜이 루스벨트 취임 초의 중심 어젠다였다면, 한국판 뉴딜은 문재인정부 임기 말의 보완적 어젠다이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반시장정책을 고수해왔고 지금도 재벌개혁을 다짐하고 있어 정책노선을 바꿀 조짐은 없다. 셋째, 이것은 가장 중요한 차이로서 루스벨트가 균형예산을 중시했다면, 문재인은 반년 사이에 나랏빚이 100조원 넘을 정도로 재정 확장에 거침이 없다. 국가부채가 감당 못 할 수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넷째, 루스벨트가 초당적 협력과 국민과의 소통으로 뉴딜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면, 문재인은 한국판 뉴딜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집권당을 앞세워 역사청산을 가속화하는 등 그동안의 대결적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다섯째, 루스벨트가 최고의 실용주의 인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면 문재인 주변에는 이념형 투사들이 다수다. 마지막으로, 100년 전 미국과는 달리 코로나 사태로 세계가 대공황에 빠지고 국제무역도 축소되고 있어 수출 의존적인 한국경제는 생존위기에 처해 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중 가장 평가가 낮은 부문이 경제정책이다. 그럼에도 한국판 뉴딜이 임시처방에만 급급하고 경제회생에 필수적인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외면한다면 문재인은 루스벨트의 길이 아니라 나라를 파탄시킨 차베스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실은 뉴딜이 아니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노멀 딜(Normal Deal)’을 요구하고 있다.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출처: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