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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우리 지도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

바른사회운동연합







필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전 언론인>




<프리즘> 우리 지도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

 

1867년 소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됐다. 일본은 43년 뒤인 1910819일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조선의 小中華 사상, 국제정세 무지,쇄국정책, 무능, 권력투쟁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반면 일본 지도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강한 일본을 만들었다. 제국주의, 2차대전 유발 등 나쁜 길로 갔지만.   

 

18711223. 150년 전 증기선 아메리카호가 요코하마 항을 출발했다. 이와쿠라 도모미 특명 전권대사 등 대미사절단이 탄 배다. 배안에는 이와쿠라 등 사절단 46명과 수행원 18, 유학생 43명이 타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도 특명전권 부사로 이와쿠라를 수행했다 

 

이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목적은 두 가지. 1858년 미국과 불평등하게 맺은 미일수호통상조약 개정과 선진 문물 견학이었다. 그러나 조약개정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시대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은 일본의 개항, 일본 내 미국의 영사재판권, 무역에 대한 일본 관원의 불간섭, 협정관세 원칙 등 일본의 주권이 무시된 체 체결됐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조약개정에 실패하자 두 번째 목적인 선진문물 배우기에 나섰다. 이들은 8개월간 미국에 머물렀다.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 경제체제 등을 보고 배웠다. 이들은 더 배우려고 유럽견학에 나섰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12개국을 돌아봤다. 이들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1873913일 요코하마로 귀국한다. 110개월만이다. 귀로에 유럽의 아시아 식민지 실론, 싱가포르, 사이공, 홍콩, 상하이도 돌아본다. 함께 갔던 유학생들은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에 남겨 뒀다. 이 들은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다.


당시 막부정권을 쓰러뜨린 혁명 정부는 내부에서 노선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선침략, 사무라이들의 반발, 세이난 전쟁 등 혁명 초기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와쿠라 일행은 110개월간 자리를 비웠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정권투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도.   


그러나 이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이와쿠라를 수행했던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정부 초대 총리를 비롯, 4차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일본 제국 헌법을 기초, 일본 헌법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내는 등 우리에겐 원수지만.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암살되자 조선은 그 유족에게 10만원이란 거금을 위로금으로 건넸다. 힘없는 조선의 비애다.   


미국은 1854년 페리제독이 군함 4척을 끌고 와 쇄국 일본의 문을 열었다. 4년 뒤에는 일본과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9년 뒤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정권을 무너뜨린다. 일본은 9년 뒤 강화도조약으로 은둔의 나라 조선의 문을 연다. 이 조약은 미국이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판박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에서 보듯 당시 일본의 지도자들이 권력 투쟁보다 사욕을 버리고 부국강병에 힘을 모은 덕분이다. 우리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사실 메이지 정부의 주역들도 초창기에는 조선처럼 개항을 반대했다. 그들은 서양오랑캐에게 쇄국의 문을 연 막부 정권에 반발, 봉기했었다. 그러나 페리 제독의 군함 등 서양의 막강한 힘을 본 뒤 마음을 바꿨다. 일본의 국력으로 서양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발 빠른 변신을 한 것이다. 실용주의적인 일본인답게 개항과 함께 적극적으로 서양문물 도입에 나섰다. 이와쿠라가 사절단에 유학생 43명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 좋은 예다.


그들은 메이지 유신 9년 만에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할 정도로 힘을 길렀다. 그 후 1894년 청일전쟁,1904년 러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세계열강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제국주의로 치달은 일본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뒤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했다. 그 동안 조선은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 투쟁, 쇄국정책, 내부 분열, 이완용 등 나라보다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던 조정 관리들에 의해 망국의 길로 접어 든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80일도 안 남은 현재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그리 녹녹하지 않다. 100여개나 되는 북한 핵 문제,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 창궐,4차 산업혁명, 부동산, 양극화, 연금개혁, 인구감소, 에너지 등 난제가 쌓여 있다. 그런데도 언론의 머리기사는 양대 후보의 가족 스캔들과 당내 분란 등 한가한 기사가 주류를 이룬다. 여야는 정권잡기에만 혈안, 아니면 말고 식의 아무 말대잔치나 벌이고 있다. 그냥 표만 된다면 원칙도 뭐도 없다. 무조건 질러 놓고 보자는 식이다. 답답하다. 19세기 후반 조선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걸어온 길이 양국의 운명을 갈랐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가는 길은 어딘가?


등록일 : 2021-12-22 10:56     조회: 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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